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준비하는 대림절 기간에 많은 교회들이 성탄절과 새해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교회들이 준비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과연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교회력에 따른 절기에 맞춰 요식행위를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는지 한번쯤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만약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교회들마다 너나없이 하는 요란한 성탄절 축하행사도, 가족끼리 함께하는 성탄 파티도, 거리마다 화려한 장식과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한국교회나 세상이 분주하게 돈과 열정을 쏟아 부어 준비하는 행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 오늘의 크리스마스 시즌의 전통은 서구의 향락문화와 이를 틈탄 상술이 빚어낸 합작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의미한 성탄절기의 분위기에 빠져 그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요절:9:13)고 하셨다. 주님 스스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밝히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는 말씀에서 보듯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에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 살리기 위해 주님이 오신 것이다.

한국교회가 지난 수 십 년간 이 땅에서 수치적으로 엄청난 부흥 성장을 이룩하게 된 그 배경에는 복음의 정도에서 벗어난 강단에서의 신학적 목회적 일탈이라는 부끄러운 과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의 대속의 피와 사죄의 은총은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기복신앙의 거센 물줄기에 한국기독교가 익사했다고 보는 진단이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질이 아닌 수단으로 변질시킨 축복, 또는 성공 방정식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많은 교단과 개교회에서 신학 따로, 목회 따로 엇박자를 내게 만들었다. 또한 더 나아가 목회의 성공과 실패를 교인 수, 교회당 규모, 예산으로 랭킹을 매기는 장삿속을 숨김없이 드러내고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이 세상에 오심과는 하등의 연관성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또 하나의 분명한 이유, 즉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는 말씀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법제화된 것처럼 굳어진 목사, 돈, 교인수라는 섬김, 또는 숭배의 대상이 얼마나 한국교회를 본질에서 이탈하게 하는 죄인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이 세상의 만왕의 왕이시고 만유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이유는 자신을 천한 인간에게 맞추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교인들에게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사람들,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 밖이다. 그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별개이며,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아무 의미없이 먹고 마시는 파티에 큰돈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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