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우리 인간은 누구나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면, 절망에 빠지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다.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아기와 엄마가 함께 주검으로 발견됐다. 또 지난 7일 세월호 유가족 사찰의혹에 대해 수사를 받던 전기무사령관 이재수 예비역장군이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죽음을 선택했다. 결국 이들의 죽음은 한마디로 절망증 원인이다.

문제는 부모의 절망증이 죄 없는 어린 아기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절망증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웃을 찾아 극단적인 선택을 못하도록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이웃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한번이라도 전해 보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 1000만명이나 되는데 죽임을 당하고, 최후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간다. 이제 대한민국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인정이 메말랐다는 것을 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나를 개방해 너를 받아 드릴 수 있는 아량이 없다는 것이며, 삭막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 화물선이 어뢰 공격을 받았다. 이 화물선은 침몰했다. 탈출에 성공한 한 승무원은 구명보트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을 전했다.

"보트에 7명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었던 삼등 항해사는 매우 절망했고, 그 절망증으로 인해 우리가 구조되기 2시간 전에 죽었다.”

절망의 극단적인 예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포로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포로로 잡힌 한 미국 군인은 누구나 인정하는 ‘타고난 해군’이었다. 하지만, 그는 수용소에 갇히자 안절부절못하다가 쓰러져 죽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모든 게 끝나면 날 깨워줘”였다. ‘절망증’은 신체적 원인 없이 극도로 무기력해져 살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포기하고, 죽는 것을 말한다. 이 ‘절망증’은 한국전쟁 당시 의무 장교들이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의료전문가들에 따르면 절망증으로 죽는 사람들은 죽는 순간까지 정신이 맑고 온전하며 정신병이나 우울증 소견을 보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극단적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인지기능은 잘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증상에 대해서 보고된 사례는 많다. 하지만, 증상의 유형에 관한 연구는 전무하다. 최근 진행된 절망증 관련 연구를 보면, 절망증은 다섯 단계로 진행된다고 한다.

1단계는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기분이 다소 처질 경우 절망증이 엄습한다. 2단계는 심한 무력증 상태가 절망증으로 이어진다. 3단계는 무엇도 결정할 수 없는 의지상실증 상태일 경우이다.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종종 말하기, 씻기 등 기본적인 자기관리를 그만둔다. 4단계는 심리적 마비 상태이다. 고통이나 갈증, 굶주림을 느끼지 않고 때로 자신을 통제하지도 못한다. 마지막 5단계는 가끔 사람이 죽기 직전 상태가 호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절망증은 고도의 명령 기능을 관장하는 전두부 피질의 특정 영역과 뇌의 깊은 곳을 연결하는 전방 대상 피질의 손상과 비슷하다. 이 신경 회로가 손상되면 주요 신경 전달 물질 도파민이 부족해서 절망증과 비슷한 유형의 증상을 일으킨다. 도파민이란 카테콜아민 계열의 유기 화합물로, 다양한 동물들의 중추 신경계에서 발견되는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이다. 절망증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패배자로 여긴다. 스트레스가 많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다시 말해 전략적 죽음으로 외상성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처 방식은 죽음이다. 때문에 이들을 죽음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들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하셨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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