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지혜로운 청지기 이야기(눅 16:1-13). 그가 주인의 재물을 축내다가 발각된다. 그는 해고되고, 횡령한 재물은 변상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꾀를 낸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서둘러 불러서 채무 서류를 위조한다. 기름 백말을 빚진 사람은 50이라 쓰게 하고, 밀 백 석을 빚진 자는 팔십이라 쓰게 한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기만을 부린 것이지만, 빚진 동료의 입장에서 보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뒤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청지기의 지혜로움에 감탄한다. 이 이야기 끝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눅 16:9).

이 말씀대로라면 불의를 저질러서라도 친구를 사귀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씀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말씀의 핵심은 청지기의 행위에 있지 않고 그 발상의 지혜로움에 있다. 주인이 청지기의 지혜로움에 혀를 차기는 했지만 그를 다시 불러 썼다는 흔적은 없다. 예수께서 정작 하고 싶은 말씀은 13절 끝에 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씀으로 지혜롭다고 칭찬 받은 청지기는 두 주인을 섬긴 영악한 자로 심판 받게 된다.

오늘날 세속사회는 어떤 사람이 쉽게 성공하는가? 불행하게도 불의한 청지기 같은 사람에게 관운이 따르고, 성공의 기회도 많아 보인다. 주인의 것을 도둑질해서 제 뒷배 봐주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는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청지기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람들은 삶의 안전을 담보 받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빚내서 벌이는 사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주인을 섬긴다. 배신을 식은 죽 먹기로 한다. 열린 입으로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다. 비루하게 사는 것이다. 불안의 시대에 달리 방법이 없다. 신실한 믿음만이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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