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자 목사
“기도는 보이지 않으나 가장 거룩하신 이와의 교제이다”
‘그리스도의 기도학교’라는 제목의 책은 기도를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중세 신학자이 토마스 아퀴나스는 늦은 밤 강단에 엎드려 기도할 때 환한 빛이 자신에게 비추는 것을 보고, 깜쩍 놀랬다. 그리고 말했다.
“주여! 당신께서 나에게 오시는 군요”
“그렇다. 너의 기도를 들었다.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네 기도를 들었다. 단 한마디로 네가 원하는 네 기도를 요약하면 무엇이냐?”
“당신 자신입니다.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향해서 간구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간절히 원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을 향해 간절히 원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곁에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말을 나누고 싶고, 손을 만지며, 인격을 갖고 싶어 한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진정한 기도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한 셀러리맨이 저녁시간이면 시장 통을 돌아 집으로 왔다. 시장 한쪽에는 가마니를 펴놓고, 그 위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눈이 보이지를 않고, 다리를 절었다. 셀러리맨은 그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차비를 쓰고 남은 동전을 바구니에 넣어주었다.

“고생하십니다. 형제여!”
그가 인사를 할 때면, 거지는 두손을 모아 정중히 인사를 했다. 애일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두사람의 관계는 매우 가까워졌다. 그런데 하루는 셀러리맨이 그 앞에 멈추고 주머니를 뒤져 보아도 동전 한 잎 없었다. 순간 당황했다. 그래서 그는 거지를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오늘 당신에게 줄 것은 이것 밖에 없군요”
“선생님이 오늘 저에게 주신 것은 그 어느날 주신 것보다 더욱 값지고 귀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 셀러리맨은 돈 대신 인격과 사랑을 주었다. 상대를 인격으로 대할 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낀 것이다. 바울도 “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너희를 사랑한다(빌 1:8)”고 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이심에도, 죄인을 위하여 집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셨다. 그도 인간이셨다. 십자가를 지시고 아픔을 고통스러워 하며, “하나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절규했다.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셨다.

그의 기도는 아버지를 부름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를 부르지 않는데 무엇을 해결해 주겠는가? 아버지는 아들의 부름에 응답하신다. 누가복음에도 늦은 밤에 친구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이야기가 있다.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되로 주리라(눅 11:8)

햇빛중앙교회 담임·충주금식기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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