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과 장성해서도 늘 어머니의 교육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어머니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스승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배웠고, 행복을 배웠으며, 이웃을 배웠다. 그리고 가족도 배웠고, 가족의 평화도 배웠다. 그래서 우리가 성장하고, 장성한 오늘도 어머니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니는 사실 내가 사람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큰 성공을 거둔 어느 벤처기업가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수술을 받아도 살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하기로 결정했는데, 수술실로 들어가는 어머니 침대를 부여잡고 형제들이 눈물을 흘렀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호령을 하며, 야단을 쳤다.

“이까짓 암이 뭐가 무섭다고 울어싸노! 암 까짓 거 눈물을 흘려서야 쓰겠노! 이까짓 암, 아무것도 아니다!”
암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의 형제들을 야단친 어머니는 수술 중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어머니는 다시 볼 수 없었지만, 아들의 머리에는 어머니의 그 추상같은 마지막 호령이 깊이 새겨졌다. 암 그까짓 게 뭐라고 쩨쩨하게 울고 있다던, 어머니의 호령이 오히려 그의 가슴에 사무치게 했다. 그 후 아들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많은 고난이 있었다. 고난이 닥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싶던 순간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까짓 게 뭐라고 풀이 죽어 있노!”, “사업 망한 게 뭐가 그리 울 일이고? 퍼뜩 몬 일어나나!”

어머니의 의연함은 아들을 절망에서 일으키는 힘이 되어 주었다.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늘 의연함을 잃지 않던 ‘어머니의 호령’에 대한 기억이 아들을 절망의 늪에서 여러 번 꺼내주었다. 그렇다 어머니는 약함 가운데 강함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명의 어머니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가족들 가운데 낙심한 자가 있으면, 힘을 불어 넣어주고, 아픈가족이 있으면, 기도해 준다. 그리고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형제들을 있게 해 주었다. 분명 어머니는 생명의 담지자이다.

12월 성탄의 계절이다. 25일 아기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이다. 성탄의 계절에 만왕의 왕이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죽임을 당하는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고만 있었을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해 본다. 로마병정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들을 보면서, 마리아는 얼마나 마음이 저며 왔을까. 우리 아들이 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와 이스라엘 총독, 그리고 로마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가? 마리아의 한은 하늘에 사무쳤을 것이다. 예수님의 죽임은 약함 가운데 강함을 보여주셨다.

아기예수의 탄생은 인류 모두에게 희망이다. 하늘에는 영광이며, 땅에는 평화이다. 오늘 인류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예수를 핵무기 개발과 하나님의 창조질서 파괴로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성탄의 계절에도 보다 낳은 삶을 찾아 국경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면서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오늘 17일 아침 KBS뉴스에 과테말라를 떠나 3700키로미터를 걸어 미국 국경을 넘은 7살 재클린 카알 마퀸이 구금시설로 옮겨진 뒤 갑자기 고열에 구토 증세를 보이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안방에 전해졌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하자 헬기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도착한 지 채 하루가 안 돼 숨졌다는 것이다. 이 소녀는 숨지기 직전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고, 물조차 마시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늘 세계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국경을 넘다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 죽임당한 아이들의 어머니는 하늘을 향해 절규하고 있다. 성탄의 계절 이 땅에 아기예수의 평화를 ………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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