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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목사] 한국교회여! 분단의 현장에 서라
이효상 목사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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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24  09: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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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상 목사.

1. ‘평화’는 ‘하늘위에서 내려오는 선물’입니다.

오늘 부제에 평화는 “_______ ”이다 라고 하였는데 필자는 찬송가 가사처럼 평화는 “하늘위에서 내려오는 선물이다.”라고 말씀드리며 시작하고 싶습니다.

“하늘위에서 내려오는 선물”이라는 것은 먼저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나 성도들이 예배 시간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로 시작하는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면, 이번 ‘통일’에 대한 발제에서 드러나게 될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최근 최전방 GP시설이 남북 양쪽에서 철거 되는 것을 보며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통일’은 정치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하나됨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모든 영역에서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미래 방향성이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36년의 강점기에도,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도 믿음으로 나라와 교회를 지켜왔습니다.

한국교회는 일제에 항거해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수많은 지도자들이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번영과 한국교회의 부흥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역사의 현장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공(公)과 과(過)가 있습니다. 오욕의 역사를 견뎌오는 과정에서 신앙을 저버린 일들도 있었습니다. 우상에 절하고 권력에 고개 숙이고, 정치에 줄서고 이념에 앞장섰던 과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를 반대하며 자유와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한국교회는 여러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신앙의 가치를 지키려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역사의 고비마다 정세와 권세가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특히 이 시대에 주어지는 ‘평화’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6.25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이 나뉘어진지 73년만에 일어난 사건, 이는 마치 성경에 남유다왕국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70년 후 이스라엘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귀환하여 다시 성전을 재건한 것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70년만에 남북이 비핵화를 전제로 이렇게까지 진전된 관계를 복원하였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입니다. 이런 회담이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꿈만 같은, 믿기지 않는 사건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또 의심하며 불안해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한반도가 전 세계에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지 않고 통일한국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삼아야만 한다는 절박성과 긴박성을 여기에서 찾으려는 노력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필자는 분단의 현장에 교회가 있었고, ‘통일의 문을 열어주옵소서!’ 기도하는 한국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남북한이 하나되게 하시려고 통일의 문을 서서히 열고 계신다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정상회담의 성과로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선 정해진 바 없지만, 내년 초에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의 제주도 방문도 연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남·북·미 간에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70년 한반도를 지배했던 '휴전체제'가 종식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화해의 봄'에 뿌려진 평화의 씨앗이 '협력의 가을'에 평화와 번영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2. '평화'는 ‘한반도의 새로운 질서’입니다.

‘평화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적화통일은 재앙일 수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종전선언 문제와 비핵화 일정에 대한 견해차로 인해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한반도 역사에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반도에서 죽음의 핵을 걷어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19일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문 대통령은 "전쟁없는 한반도가 시작됐습니다"라고 운을 뗐고 김 위원장은 "선언은 길지 않아도, 머지않아 현실로 펼쳐질 우리 모두의 꿈이 담겨 있다"고 화답했습니다.

이렇게 두 정상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 비핵화 방안과 관련해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진전을 조속히 이뤄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명시하고,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군사긴장 완화에 대해선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적대관계 해소를 이어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한반도 평화를 기대하게끔 하는 만남과 조치들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남북 양자 회담사에 최초로 구체적 비핵화방안을 합의·발표한 사실은, 휴전체제아래 한반도 상황에서 중대한 '변곡점'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9월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채택된 군사 분야 합의서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부분은 남북의 두 정상이 사실상의 ‘종전선언’을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지경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했던 '휴전체제'가 끝나고 새로운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 긴장완화 부분에서 너무 섣부른 양보를 펼쳤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북한과의 평화를 위해서 너무 많은 것을 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핵 제거를 위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맞바꾸었다는 우려입니다. 민초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쪽으로 교회가 기여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김정은 위원장 답방과 경협 준비로 한창인데, 돈 주고 뺨맞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라는 생각과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반문하게 됩니다.

둥근 축구공은 날아오는 각도와 세기, 회전에 따라 어디로 튈지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럭비공은 어떤 부분이 땅에 닿느냐에 따라 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왜 북한을 럭비공으로 표현합니까? 북한사회는 철저하게 최고 통치자 1인에게 국가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초월적 권력은 김일성에게서 아들 김정일에게로, 또 손자인 김정은에게로 세습되었습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이 어떤 전통이나 다수의 의견수렴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고 통치자 한 사람의 결정과 지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최고 지도자가 결정하면 국가 전체가 그 방향을 따릅니다.

우리 정부가 주도하는 ‘운전석’에 앉은 통일논의는 사실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산불이 난 것을 본 사람은 혼자서 그 불을 끄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산불 진화는 한 사람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함께 꺼야 한다.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든타임을 무의미하게 지나쳐버린다면, G1 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영향력에 북한이 완전히 예속되어버려 영구 분단의 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게 아니라 ‘소통’과 ‘상호존중’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70여 년간 켜켜이 쌓여온 불신과 두려움을 한 번에 털어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가능한 일입니다. 미사일과 핵을 흔들던 북한이 어느날 갑자기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마치 보여주기 위한 ‘쇼’를 하듯 합니다. 진정성이 그리 많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대화의 현장으로 나왔다는 것은 진일보한 것입니다.

‘평화’는 이런 남북의 ‘이질성’을 어떻게 ‘동질성’으로 바꿀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소통의 공감대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평화’는 갈등과 불신을 멈추는 것이며,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말로만 이루어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실제의 행동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슴을 열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데서 관게가 형성되고 ‘평화’의 기운이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지난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송이버섯 2톤을 보내온 것에 대한 답례품으로 정부가 지난 11일 제주 감귤 200톤을 북한으로 보낸 것은 남북화해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감귤 전달로 인해 남북 정상이 백두산에 이어 한라산에 올라가게 된다면 아마도 남북통일은 한걸음 앞당겨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먼저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인 식량과 어린이 노약자를 위한 의료품 등이 국제 기구를 통해 조속히 제공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면 합니다.

우선은 끊어진 길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야 합니다, 물자가 오가게 해야 합니다. 경의선의 경우 이미 2003년 공사가 끝나 화물열차가 운행된 바 있습니다. 분단 이전만 해도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잇는 허브였습니다. 서울역은 ‘국제역’으로 국내선 승차장과 국제선 승차장이 따로 있었습니다. 행선표에는 베이징과 단둥, 하얼빈이 있었습니다. 망국의 한을 가슴에 품은 민초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이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철로는 한반도 이곳저곳과 대륙을 연결하며 민족의 대동맥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분단 이후 남쪽에서 대륙으로 연결되는 모든 철길이 막히면서 한반도 이남은 '섬'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분단과 도발, 전쟁을 전제로 한 사회체제(국가보안법, 징병제 등)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종전선언'과 이를 통해 전개될 교류와 협력의 평화체제는 한국인들이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낯선 체제입니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들어서면 한반도는 바다와 대륙의 허브가 되어 수많은 사람과 물자, 지식과 문화를 연결하게 될 것입니다.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가 들어선 지 70년. 이 땅에서 갈등과 분쟁, 전쟁의 위협은 변수가 아닌 상수였습니다. 지난 세기말 소련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로 이데올로기 냉전은 종식됐지만, 한반도에서의 냉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냉전 한가운데 도로와 철도가 놓이고 사람들이 오가며 물자가 넘나들던 작은 해빙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종전' 이후에 전개될 장밋빛 전망에는 전쟁 불안 해소에 따른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도로와 철도 연결, 항공기북한 통과 등으로 인한 경제효과 등이 거론됩니다. 당장 북한과 연결되는 우리 쪽 철도와 도로 연결 공사는 올해 안에 시작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남측 구간의 도로와 철길 연결공사는 대북 제재에 직접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남과 북의 두 정상은 세 차례 만났고,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 세 번의 북중 정상회담이 열렸거나 열릴 예정입니다. 현재와 같은 남북관계의 환경이 주어진 것은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입니다. 어찌보면 기회이고 축복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급진전은 다툼과 화해, 상처와 회복을 반복하면서도 만남을 포기하지 않았던 남북, 아니 우리 민족이 일궈낸 역사적 사건입니다. 남북은 이제 '평화'라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 대담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현재 남북은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위하여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소통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와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위한 초석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4. ‘둘로 하나를 만드는’ 은혜, 평화의 주도세력 '피스메이커'(Peacemaker)는 교회입니다.

성경에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단의 현실, 분단의 현장에 교회가 있습니다. 통일에 앞장 서는 일은 교회가 마당히 해야 할 일입니다.

평화 통일에도 말방구신자가 있습니다. 말꾼, 방해꾼, 구경꾼, 신자는 일꾼입니다. 교회는 통일의 일꾼입니다. 교회밖에 없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됩니다. 분단의 현장에 교회가 있음으로 충격을 최소화하는 스펀지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치 독일의 니콜라교회가 꿈꾸던 복음통일을 이룩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간디의 사상을 보면, 그는 누구에게도 폭력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악인을 선한 인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기독교적 혜안을 가지고 평화의 문제를 바라봤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크리스천도 스스로에게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면서 갈등을 평화로 바꾸는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삶 속에서 겪는 갈등, 그 다양한 종류의 상황들을 통해 좌절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더 높은 차원으로 성숙해 나가며,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돼 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경계하고 바른 판단력으로 시대를 읽고 스스로에게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결국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 분열의 문제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을 뿐 아니라 상황이 더욱 악화돼 ‘연합’이 더 어려워져가는 상황을 보면서 과연 통일을 맞이할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인가.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되지 못하는 교회가 통일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현실의 교회는 분열의 주체가 되고 있고 이념과 정치의 대립속에 앞장 서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양보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교회가 민족이 화합과 평화, 통일로 나가는데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지는 우리 안에서 거룩한 교회로 하나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된 교회가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과거 동서독 관계에서 서독교회가 동독교회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해 신뢰를 얻은 것은 통독 과정에서 크게 기여한 바 있습니다.

북한에는 칠골교회와 봉수교회, 두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이름앞에는 아무것도 붙지 않습니다. ‘장로회나 감리회 등 교파가 없습니다. 앞으로 북한에 교회가 세워진다면 앞에 수식어가 붙은 것 다 빼고 넉자만 있는 그런 교회가 오히려 이상적입니다. 우리의 수준에서 ‘교파’라는 장벽을 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 지역에서는 교단과 교파 경쟁이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쓸데없는 경쟁을 재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서로 마음을 열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또한 여태껏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을 교류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는 인정하고, 앞으로도 대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를 할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를 통해 북측과 상호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이런 저런 갈등 속에서 교회의 치열한 자기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참된 평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남북간 평화의 노력 못지않게 국민통합, 남남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 통합시키고 미래 비젼을 제시해야 합니다.

여와 야, 정부와 관계자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함께 통일의 길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단체가 등장하여 김정은 답방 환영집회를 연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식인들이나 국민들이 볼 때 대낮에 도깨비놀음 하듯 생뚱맞은 것입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감을 불러일으키며, 남남 갈등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평화를 위해서 남남갈등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의견이 다른 이들과 끝까지 소통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남북의 통일을 이루다 남남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북한은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으로 70년동안 철저히 세뇌되어 왔습니다. 이런 북한과 통일하게 되면 여러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교회와 우리 국민이 서로 분열하고 다투면 안됩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교회가 할 일은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분열’과‘분단’을 극복하고 ‘통합’과 ‘통일’로 나가기 위한 대대적인 회개운동, 영적 대각성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야만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혀 가게 하신 것도,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도록 허용하신 것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붙들어야할 가장 중요한 영적 의미는 바로 “진정한 회개”를 통해 ‘둘로 하나를 만드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지난 세월동안 통일의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는 빗장을 여는 열쇠는 바로 한국교회에게 주어져 있습니다(마 16:19). 이제 평화통일의 초점을 예측하기 힘든 북한의 미래나 변화무쌍한 남북관계에 두기보다는, 우리 자신과 한국교회의 회개와 영적대각성에 맞출 때 답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5. ‘평화통일’과 더불어 ‘복음통일’이라는 양면성을 지녀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에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서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그러나 통일 접근 방식에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복음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한국교회의 과제인 것은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으로 살아왔으며, 국제정치적인 역학관계에 따라 타의에 의하여 분단되었습니다. 아직도 남북으로 헤어져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이 있고, 종교와 인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박해 당하는 북한의 동포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픔과 고통의 종식시키기 위해 우리는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찌보면 더 나아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안하면, 북한 땅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당연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런 확고한 신념과 사명의 기초위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계속 추진해가며 기도해야 합니다.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한국교회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시대를 읽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혀 있으면 한국교회는 맛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히는 것(마 5:13)이 현실입니다.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도 없고, 알면서 미룰 수도 없는 열강속에 남북생존, 즉 공존이라는 절대 절명의 시간 앞에 지금 서 있습니다.

한반도에 불어오는 훈풍으로 '통일이 온다'란 기대감이 지나치게 높은 점도 있습니다. 사실 평화통일은 단기적으로 해결이 어렵습니다. 풀어나가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성도들은 일희일비하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합니다. 기독교적인 통일은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통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개방과 부흥에 중점을 두고 북한을 섬기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도 극복하고, 치우친 이념성향의 관점도 극복하여 평화통일을 선도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북한 체제가 스스로 무너질 것이란 허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대북 교류협력을 활성화하여 ‘사실상의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한발 한발 성실하게 내딛는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사분오열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고, 이념과 사상에 사로잡혀 있고, 교단과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성도와 성도, 교회와 교회가, 교단과 교단이 하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로의 의견이 틀린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화평이신 주님께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2:14) 하나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기 기도합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는’ 사명을 가진 한국교회가 피 묻은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간절함이 앞섭니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 될 때, 남북을 한 새 사람으로 지어 하나님과 화목하고, 열방을 복음으로 섬기는 통일한국을 한반도에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분단의 현장에 교회의 현주소가 있습니다. 분단 현장에 교회가 화해의 중보자로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시대를 바라보고 지금까지 지내왔던 패러다임을 바꿔 사랑과 화평과 하나됨으로 나와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먼저 회개하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하나되면, 충분히 한국사회도 변화되고 북한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평화통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복음통일’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 복음으로 교회가 먼저 하나되고, 남한이 하나되고, 남한과 북한이 그 기초위에서 하나될 때 1907년 평양에 임했던 하나님의영광과 부흥을 이 땅에 다시 재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분단을 넘어 평화의 시대를 열어가는 한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서 한국교회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양보해야 하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치열한 자기희생을 통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참된 평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서로 틀렸다고 비판하기 보다는 오해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십자가 복음으로 하나돼야 교회의 역할과 자리가 있습니다. 교회여! 분단의 현장에 서라!

한국교회건강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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