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예언자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는 유다 민족을 향해 인생의 성장과정(바이오 그라피)에 비유해서 말한다. “젊어서 고생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고생스럽다고 자꾸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입술을 티끌에 대라”(애 3:29). 입술을 티끌에 댄다는 게 무슨 뜻일까? 땅에 엎드린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접고,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 침묵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입술을 티끌에 댄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낮추는 행위이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마음을 낮추는 겸손이야말로 새로운 내일을 약속 받는 첩경이다. 고난이 인간 편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나를 낮추시고, 지혜롭게 하시고, 더욱 강하게 훈련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역시 박해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히브리서 기자는 “게으르지 아니함” “믿음” “오래 참음”을 계속해서 주문한다(히 6:12). 이 주문들은 모두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의 ‘시간’이 내포되어 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표징들은 반드시 시간의 숙성과정 곧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는 분이시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참고,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쉽게 점술, 복술, 무속에 끌리는 것은 그들의 점복에 시간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점술 복술 무속 등은 쉽게, 요행으로, 초시간적으로, 수고하지 않고 이뤄지는 환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식의 기적을 좋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성서에서 기적은 인간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임을 말해주는 일종의 표현양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다. 믿음은 시간이 배제된 환각과 망상을 근본적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소심한 아브라함이 믿음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그의 인간됨 때문이기 보다, 그를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변덕스러운 세상사로 인해 실망하지 않는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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