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한반도 평화, 민족 화해와 통일 위해 봉사하는 교회2019년 새로운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로의 변화를 절실하게 요구한다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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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31  16: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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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곧 전쟁과 기아가 없는 세계평화 담보하며, 인류 희망의 닻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한 형제인 남북한 민족 갈라져서 살 이유가 전혀 없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에 봉사하자

2019년 기해년이 시작됐다. 본지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를 향한 2019년 ‘평화’로 던진다. 그것은 우리민족에게 있어 한반도의 평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곧 세계평화를 담보하는 동시, 한민족 모두가 전쟁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함께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평화는 한민족에 의해서 결정되지 못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긴장은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서 조장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문제인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그리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논의하거나, 말하지를 못했다. 그것은 정부의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오늘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민족통일의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평화, 화해, 통일을 말하는 사람들은 용공, 또는 좌경분자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로 생각해 왔고, 생각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인사들을 좌경, 용공으로 매도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샬롬을 외쳐야 한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로마팍스’를 외치기에 바쁘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한국에 길들여지고,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기득권자가 되었고, 분열과 갈등에 익숙해져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오늘 남북한의 상황에서 더 늦추어서는 안된다. 남북한 민족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바람이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를 담보하고, 남북한 민족이 함께 사는 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긴장상태에 놓여 있었다. 언제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평화는 누가 가져다가 주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 민족 당사자들이 화해를 이루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주변국들의 방해에도 가야하는 것이다. 같은 언어와 피부색갈이 같은 형제들이 남북한으로 갈라져 총부리를 겨누고 살 이유가 전혀 없다. 특히 교회는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복의 화해, 그리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세계교회는 동서로 갈라지는데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세계교회는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동서가 화합하는데 중심에 있었다. 그것은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남북이 갈라지는데 한국교회가 중심에 있었던 만큼, 이제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디에서도 평화를 위한 노래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목회자와 교인들로부터 날아오는 SNS의 내용 대부분은 남북한 평화를 위한 대화를 거짓평화, 위장평화로 매도한다. 이미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에게는 “무조건 공산주의인 북한은 싫다”는 관념이 자리를 잡았다. 변화의 모습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 화해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한민족은 함께 살아야 하고, 함께 하나님나라에 가야 한다. 이러한 진리를 거역하는 것은 분명 적그리스도이며, ‘로마평화’를 신봉하는 자들이다.

한국교회는 한민족 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며,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다. 또 남북한 민족이 사는 길이다. 한국교회는 남북한 평화통일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적이 있다. 이 운동은 한민족 모두의 선교를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었다. 분단된 상태에서는 민주화도, 인권운동도, 빈민운동도, 경제정의도 담보해 낼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그리고 평화적인 통일운동의 중요성을 강하게 제기해 왔다.

평화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이러한 운동은 갈수록 그 영향력은 상실해 갔고, 지금은 방관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교회가 반통일적이며, 반평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야 옳다. 가진 것이 너무 많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내려놓을 수 없다. 그래서 본지는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2019년 새해 벽두에 한국교회를 향해 분단의 현장, 통일의 현장으로 들어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한민족의 소원이며, 민족의 염원이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한국교회가 딛는다면, 한민족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에 있어 종교개혁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한국교회는 80년대 독재정권의 억압 아래서 종로5가를 중심으로 통일을 향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소위 ‘88선언’을 통해 통일운동의 방향성을 제시한 적이 있다. 분단된 나라에서 사는 한민족에게 한마디로 희망이었다. 하지만, ‘88선언’ 이후 정부의 감시 아래서 구체적 사업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당시 통일을 말하는 사람들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용공분자’들이었다. 기독교의 88선언은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것은 당시 통일운동의 주체가 국민이 아닌 정부만이 하는 일로 생각했고, 정부 주도로 통일운동이 논의되었다. 감히 국민들의 입에서 통일운동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사이에서 종로5가 중심의 88선언이 나온 것이다. 간헐적으로 통일운동에 가담하는 인사들은 ‘좌경’, ‘용공’으로 몰려, 고난을 당해야만 했다. 국민들이 통일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를 못했다. 88선언은 민간 주도의 통일운동에 대한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1990년대 이후 기독교 통일운동의 주도권을 정부에 내 준 이후, 한국교회의 남북한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봉사하는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상태이었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민족통일과 한반도의 평화운동은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아니 지금까지 통일운동에 가담했다가 고난을 당한 사람들을 매도해온 한국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쉽게 받아드릴 수 없다.

오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통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여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은 반통일적인 관념에 길들여져 왔고, 해방이후 그렇게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일인 독재체제인 북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관념이 그리스도인들의 머릿속에 꽉 차 있다. 대신 로마평화, 팍스를 말하며, 평화의 현장, 화해의 현장과 유리되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그 동안 기독교의 평화운동과 화해운동, 그리고 통일운동을 뒤돌아보고 새로운 교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를 향한 사업을 만들어 내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과 꿈을 꾸며,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예배시간마다 이를 위해 기도했다. 하지만 그 기도는 허공을 치는 기도에 불과했다.

올 한해 한국교회는 남북관계와 국제정세의 변화,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의 동향, 정부의 대북정책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라도 분단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탄력적인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봉사하고,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그렇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곧 외침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민족에게 소망과 희망으로 다가 올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분명한 우리의 믿음이다.

행동하지 않는 한국교회

2018년은 역사 속에 묻히고, 희망찬 2019년 새해를 맞았다. 지난 1년을 뒤돌아보고, 또 1년을 시작하면서, 한국교회는 야심찬 신년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교단과 단체, 그리고 교회가 세운 신년계획은 역사 속에 묻혀버린 2018년도의 사업계획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교회는 역사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안테나를 잃어버렸다. 올해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단체마다 이를 기념하겠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3.1만세운동의 주체가 누구이며, 3.1만세운동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100년 동안 한국교회의 3.1만세운동은 33인, 특히 기독교인 16인을 기념하는 행사에 머물러 있었다. 3.1만세운동의 현장에 이들은 없었다. 학생들은 이들을 믿을 수가 없어 3.1만세운동의 거사를 4월1일 서울역에서 갖고, 이들은 고향으로 흩어져 교회의 조직을 활용해 3.1만세운동을 일으켰다.

3.1만세운동이 계속된 1년 동안 교회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이 때문이다. 또 3.1만세운동은 분명 비폭력 평화운동이다. 일본경찰과 헌병은 비무장 한민족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또 교회당에 교인들을 몰아넣고, 불을 질렀다. 당시 한국의 선교사들은 본국에 보고한 선교보고서에서, 비무장, 비폭력 평화운동, 민족운동, 독립운동을 폭도들의 폭동으로 매도했다. 이 같은 사실을 한국교회 왜 감추는가. 분명 3.1만세운동의 주체는 기독여성과 기독농민, 걸인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종교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희망이 없다. 세상에 등불이 되었던 한국교회는 오늘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세상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다”고 했다. 민족의 문제를 외면하는 한국교회가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오늘 개신교는 자기 게토화에 빠진 나머지 민족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 통일의 현장, 역사의 현장서 한민족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했다. 이곳에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남북한 민족의 분열과 갈등을 심화시키는데 중심에 있었다.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교회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를 못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정치과 권력 아래서 신음하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자, 장애인 떠돌이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삶의 현장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이들의 삶의 현장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었다. 그래서 뜻 있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간과 공간에 교회를 세우라고 촉구한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 한민족을 일본식민지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제 한국교회는 한민족의 소원이며, 염원인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특히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는 개신교는 이를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곳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러 할 때 국민들은 교회를 신뢰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 갇힌 예수님, 하나님을 세상 밖으로 불어내야 한다. 하나님을 성전에 가두어버린 다윗 왕조는 멸망했다. 이 때 예언자 이사야가 나타나 메시아 왕국을 예언하지 않았는가.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전쟁의 위기 속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가슴 찢으며 기도해야 한다.

2019년 분단의 현장에 교회 세우자

오늘 로마팍스적이며, 반통일적이고, 반화해적인 모습만을 보여서는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있다. 이제라도 한국개신교는 예언자적인 종교개혁의 정신, 세례요한이 강조한 인간의 변화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이 계셨던 삶의 현장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성전 예수님, 성전 하나님을 세상으로 불러내야 한다.

북한동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는 세상 밖에서 고난을 당하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교회다운 교회가 아닌가. 지난 한 해 한국교회는 개교회, 아니 자기 게토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종교개혁을 말하면서 ‘신’을 교회 안에 가두어 버렸다. 하나님보다도 맘몬을 더 섬긴 나머지 하나님나라운동, 새로운 나라, 새 세상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을 개인의 욕망과 바벨탑을 쌓는데 철저하게 악용했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신’의 자리를 ‘맘몬’으로 대치시킨 나머지, 연일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하나님나라만을 외쳤다. 행동하지 않은 교인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2017년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허공을 치는 종교개혁을 외쳤다. 2018년 어디에서도 종교개혁의 바람은 불지 않았다. 루터만 실컷 우려먹었다. 그것은 보수적인 단체나, 진보적인 단체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러했다. 예언자적 전통에 의한 종교개혁을 실현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평화를 실현하는데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오늘 세계는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등장했다(신의 자리를 맘몬이 빼앗아 버렸다). 신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되었고, 그의 성체는 돈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나라는 모든 인간이 찬양하는 자본주의 보편문명이 되었다”(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 콜럼버스 미대륙 침략 500주년 특집서 지적)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해 봉사하자

이런 상황에 처한 한국교회가 과연 한반도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예수님의 ‘샬롬’(평화)을 말하자 않는다. 폭력에 의한 팍스(로마평화)를 말하며, 국민들을 협박하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왔다. 오늘 카카오톡으로 전달되는 목회자와 교인들의 문자메시지는 기독교인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목사들은 반평화적이며,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인 말들을 사정없이 퍼 나르며,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들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인가. 미국의 백성인가 분간이 안 간다.

100년 동안 계속된 십자군 전쟁 이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전쟁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어났다. 이를 거룩한 전쟁이라고 명명했다. 오늘 한국개신교는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세계평화를 담보하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한민족의 선교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한민족의 선교는 북한 동포만의 선교가 아니다. 남한 동포만의 선교도 아니다. 230여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선교여야 한다.

분명 하늘은 혼자 가질 수 없다. 하나님나라도 혼자 들어갈 수 없다. 한민족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봉사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한해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어떻게 봉사 할 것인지에 대해 여러 방향서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2018년은 과거가 되었다. 2019년 기해년 새해를 맞았다.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으로 들어가 한민족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국론분열은 여기에서 멈추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한다.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를 담보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 한민족 모두에게 희망을 주자. 이것이 한국교회에 있어서 새로운 나라의 완성이며, 전쟁과 기아로 인해 고난당하는 인류의 평화에 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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