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 아침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독자 여러분과 한국교회에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린다.

전국의 교회들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그 첫 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영시 예배로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의 일출 명소들은 새해 처음 떠오르는 해를 보기위해 몰려든 엄청난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매일 뜨고 지는 똑같은 해지만 1년 단위로 돌아오는 새해가 주는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이처럼 지난 과거를 지우고 리셋해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2019년 새해 첫날 아침에 우리 모두는 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소망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게 된다. 2018년이 경기침체 장기화와 각종 사건사고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면 2019년 새해에는 경기가 잘 돌아가고 사회도 안정되어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를. 사람들이 송구영신 예배에 참석해 어제와는 180도 다른 마음과 자세로 새로운 출발을 하리라 다짐을 하거나, 새해 영시 정각에 타종되는 보신각 종소리를 들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리라 자신과 굳은 약속을 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맘때마다 방송에 소개되는 시민들의 새해 소망을 들어보면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규직으로 취업이 되어 결혼했으면 좋겠다”, “새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다” 등등. 저마다 마음의 소원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속에 가득 담고 새로운 한해를 맞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모두의 마음의 소망하는 바와는 너무나 다른 냉엄한 현실이 늘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경기 침체는 지난해보다 더욱 심화될 것이고,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정부의 장밋빛 분배 경제 정책이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어 청년 실업자는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을 상대적 빈곤으로 몰아 우리 경제를 더욱 혹한에 떨게 하리란 것을 말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은 분단이후 세 차례나 만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판문점 선언을 하고, DMZ 철조망을 걷어내고, 남북을 잇는 철도 착공식을 개최하는 등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평화무드를 조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지지부진하고 한반도의 미래는 여전히 미국,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손바닥 위에서 결정되는 국제 사회의 힘의 질서라는 냉혹한 현실을 우리가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모름지기 살아 숨 쉬는 모든 피조물은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바꿔가며 부단히 내일을 향해 나아가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새해가 되었는데 과거로 돌아가거나 그 자리에 그대로 안주하려 한다면 이는 구태이며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 할 수 없다.

2019년 새해에는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기를 소망한다. 분열의 죄를 회개하고, 거대 교권의 갑질이라는 구태와 오만의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한국사회에 희망을 주는 교회로서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생명의 본질을 회복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대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나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신 말씀이 헛되이 땅에 떨어져 밟히지 않기를 또다시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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