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믹돌과 바알스본에 견주자면 비하히롯은 훨씬 더 오리무중이다. 비하히롯은 구약에 오직 3 차례 언급되며 모두 출애굽 경로와 관련된 지명이다(출 14:2,9; 민 33:7). 비하히롯이 어려운 것은 고고학적 자료나 여타 문서에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히브리어로는 ‘비’와 ‘하히롯’ 두 형태소로 나눌 수 있다. 두 단어가 연계된 합성어다. 따라서 이 연구는 ‘비,’ ‘하히롯,’ 그리고 ‘비하히롯’ 등을 고려해야하며 출애굽 경로의 연장선에서 분석해야 한다.

먼저 ‘비’는 이집트어 ‘피’(Pi)를 잘못 음역한 한글표기이다. 출애굽기의 ‘비돔’(1:11)을 비롯하여, 이집트 지명에 ‘비라암셋,’ ‘비하솔’ 등도 같은 맥락이며 이 경우 ‘피’는 신전이나 궁전을 뜻한다. 즉 비돔(Pithom)은 아툼 신전(House of Atum), 비라암셋(Pi-Rameses)은 라암셋의 궁전(House of Rameses), 그리고 비하솔은 하토르의 신전(House of Hathor)을 각각 가리킨다. 또한 ‘바로’로 알려진 이집트의 최고 관직 ‘파라오’(Pharaoh)도 이와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이집트 왕이나 왕조를 일컫기도 하지만 문자적으로는 태양신 ‘라(Ra)의 신전’이란 뜻이다. 후대 이집트 19왕조(B.C.E. 1306-1200)의 ‘파라오’는 통치 왕조를 가리키는 용어로 마치 청와대나 백악관처럼 당시 통치자를 상징하게 되었다.

출애굽기에서 이집트어 ‘피’는 히브리어 ‘페’(הפ)로 쓰여서 신전 대신 ‘입’ 또는 ‘입구’를 뜻한다. 하우트만은 ‘피’가 거대한 신전이 아니라 분명히 진입로를 가리키며 이집트어를 마치 히브리어처럼 사용한 것으로 본다. 겉으로는 이집트어지만 내용상으로는 히브리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히롯에 집중할 차례다. 민수기에 ‘하히롯’이 한 번 나온다(민 33:8). ‘하히롯’의 뿌리는 ḥ-r-t로 ‘새기다, 파다’는 뜻이다. 곧 하히롯을 성 주변의 해자(moat)로 볼 수 있다. 해자(垓字)란 보통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부의 침입을 교란하기 위해 성곽 주변에 강을 끌어들이거나 연못을 파서 물을 채워 놓은 방어선을 가리킨다.

이 점에서 <70인역>이 비하히롯을 고유명사로 인식하지 않고 ‘거주지’(ἐπαύλεω󰐠)라고 번역한 것은 흥미롭다. 왜냐하면 번역자가 비하히롯을 ‘하차로트’(חצרת) 곧 목초지나 농장 등으로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콥틱어 Achirot는 ‘사초풀’로 해석할 수 있으니 나일강 하류의 습지 ‘라스 아타카’(Ras Atakah) 지역을 떠올릴 수 있는 제안이다. 이렇게 되면 하히롯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늠하는 데 단서가 된다. 히브리를 포함한 이집트 노예들이 토성이나 운하를 건설하던 현장, 또는 새로운 ‘개척지’의 집단 거주지라면 이집트를 표상하는 사랑과 음악과 정열의 신 ‘하토르’(Hathor)를 세워 노동자들을 위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본디 ‘하토르’가 히브리어 ‘하히롯’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하히롯은 ‘여신 하토르에게 가는 길’을 뜻하게 된다.

랍비들은 하히롯의 논점을 다소 엉뚱한 각도에서 풀이한다. 중세 유대교 석학 라시는 하히롯을 ‘히롯’(ḥerut)과 정관사 ‘하’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된 자유인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문자적으로 ‘바로 그 자유’를 뜻한다. 추상명사에 정관사가 결합될 수 없지만 이 경우 특수한 의미로 제한된다. 라시는 그 이유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출애굽하여 부여받은 절대적 자유를 유일회적인 의미로 강조한 것이다. ‘하히롯’의 지리적 관점이라기보다 ‘자유’의 신학적 관점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지하는 논리적인 해석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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