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출애굽기가 들려주는 한 끔찍한 이야기(출 2:1-10). 이집트의 왕 바로는 늘어나는 노예들의 인구를 줄이기 위해 산파들을 시켜 히브리 여인들이 사내아이를 낳는 족족 죽이라고 한다. 히브리인들에게는 참으로 어둡고 슬픈 시대이다.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도 세상은 암울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에 헤롯 대왕은 베들레헴 일대에서 태어난 3세 미만의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영을 내렸다. 이처럼 암울한 시대임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꽉 막힌 세상이라 할지라도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히브리 산모들이 바로가 펴 논 죽음의 그물망을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들에게서 바로의 영을 거역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바로는 더 엄격한 영을 내린다. 히브리 여인들이 낳은 사내아이들은 모두 강에 던져 죽이라고 한 것이다. 이럴 때 레위 족속 가운데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3개월을 숨겨서 키웠다. 울음소리가 너무 커서 더는 숨길 수 없게 된다. 바로의 명령대로 강에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장면에서 산 자식을 강에 버려야 하는 어머니 요게벳의 심정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성경에 그의 기도를 소개한 것은 아니지만, 앞뒤 사정을 볼 때 그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기도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강물에 띄운 아이는 마침 강에 나온 바로의 공주에게 발견되고, 공주는 히브리 족속의 아이라는 걸 알면서도 양자로 들인다. 그것도 아이의 생모인 요게벳을 유모로 들여 황제의 거처인 궁궐에서 왕자로 자라게 된다. 지엄한 황제의 영을 황실의 공주가 거역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악의 권세가 촘촘한 그물로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이다. 앞뒤 꽉 막힌 시대. 오늘 우리도 요게벳처럼 필사적인 기도가 요청되는 시대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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