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주 교수.

출애굽기 14장에 소개된 출애굽 초기 경로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우선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떠나 숙곳과(출 12:37) 에담을 지나(13:20) 광야로 전진하다가 오던 길로 돌아가라는 명령(14:2) 때문만은 아니다. 또 하나는 야영지 소개에 믹돌, 비하히롯, 바알스본처럼 여러 지명이 동시에 언급되는 경우가 없을 뿐더러 약간 과장하면 미로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민 33:5-49). 무엇보다 세 지명과 함께 언급된 일반 명사 ‘바다’로 인해 정작 천막을 쳐야할 공간이 더 혼란스럽다. 이처럼 헷갈리는 출애굽기의 안내를 의식했는지 민수기는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가 믹돌 앞’으로 보도하고 있다(민 33:7).

이집트 탈출 이후 세 번째 야영지를 복잡하게 소개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 본문에는 야영지를 소개하기 위한 전치사 ‘앞’이 두 차례 나온다. 곧 비하히롯 ‘앞’과 바알스본 건너 편 ‘앞’이다. 해당 장소를 설명하기 위한 친절한 장치이다. 본문에 따르면 천막의 위치는 바다와 비하히롯을 중심에 두고 오던 길의 믹돌과 비하히롯 앞이며 나갈 길의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여야 한다. 더구나 바로의 군대를 생각하면 천막의 위치가 오히려 추격대와 가까워지는 꼴이니 이해하기 어렵다. 정작 바로가 예언한 대로 ‘광야에 갇힌’(3절) 것인가, 아니면 모세의 치밀한 교란 작전인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탈출 초기 경로의 세 지명을 규명하기 위한 지정학적이며 신학적인 중요성을 다뤄야하는 근거는 명백하다.

믹돌은 어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집트 제국을 상징하는 거대한 감시탑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경선 부근의 믹돌이라면 바로의 통치 하에 있는 ‘중다한 잡족’(출 12:38)을 포함한 노동자와 노예들을 감독하기 위한 건물로서 제국의 막강한 위용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집트 노예들에게 믹돌이란 최고 권력으로 무장한 제국의 압제와 감시를 표상한다. 이에 비해 비하히롯은 ‘운하 입구’나 ‘하토르에게 가는 길’을 뜻하는 이집트어에서 새로운 여정을 눈앞에 둔 ‘자유’를 뜻하는 히브리어로 읽어야한다. 중의적인 비하히롯을 놓치면 여전히 믹돌의 연장선에 갇히는 형국이 된다. 왜냐하면 이집트어 비하히롯은 고통스런 노역의 현장과 노예의 삶을 반영하지만, 히브리어는 비하히롯은 과거에 고정된 삶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인 해석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한편 바알스본은 ‘자유의 몸’ 이스라엘이 새롭게 직면하게 현실이다. 바알스본은 이스라엘을 믹돌의 억압과 속박(bondage)과는 달리 새로운 형식의 복종과 예속(subordination)으로 옭아맬 수 있다. 바알은 생활과 신앙의 두 가지 관점에서 이스라엘에게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가나안의 정착과 농경문화이며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는’ 바알의 풍요와 형상이다. 특히 ‘보이지 않는’ 야웨의 음성에 의존하던 이스라엘에게 바알의 유혹은 시각적으로 쉽게 다가왔고 거부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이제 이스라엘은 믹돌과 바다를 벗어나면 제국의 노예에서 광야의 자유인이 된다. 나본은 비하히롯이 두 차례 쓰인 차이를 비교한다. 즉 ‘비하히롯 앞’과 ‘비하히롯 위’이다. 2절은 바다를 건너기 전의 상황 ‘자유를 찾아가는 길 앞’이라면, 9절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 바로의 추격을 피해 ‘자유의 길 위’를 당당히 걷는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자유(自由)는 간섭이나 제약을 받지 않고 자기 의지에 따른다는 뜻이다. 영어 free는 원시 독일어 freo에서 비롯되어 ‘매이거나 갇히지 않는,’ 그리고 ‘저절로 빠져드는’ 상태를 가리킨다. 후자에서 ‘친구’(friend)가 나왔다. 그러니 자유란 어딘지 모른 상태에 빨려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바알스본을 경계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에게 비하히롯은 믹돌의 치욕과 압제의 자리에서 벗어나 자유의 헌장을 선포하는 자유의 현장이다. 바알스본은 제국의 명예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다가 또 다른 멍에를 초래할 수 있는 탐닉과 방종, 가나안 문화의 유혹을 일깨운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누릴 수 있는 자유(비하히롯)는 믹돌(제국)과 바알스본(우상) 사이에 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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