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성 훈 목사

2016년 영화 ‘귀향’이 개봉됐다. 이 영화는 태평양전장의 한가운데서 일본군의 희생양이 되어 돌아오지 못한 20만명의 대한민국 딸들의 한을 담고 있다. 국민들이 이 영화에 주목하는 것은 잘 만들어져서가 아니다. 또 보고 싶은 영화여서가 아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농락을 당하며, 끔직한 고통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돌아오지 못한 이 땅의 소녀 20만명의 한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본군 성노예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당시 희생자였던 정신대 할머니는 몇 분 살아있지 않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오늘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이들의 절규가 하늘에 사무친다. 이들의 사무치는 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영화 <귀향>이다. 이 영화는 1943년 천진난만한 열네 살 정민(강하나)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강제적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민은 함께 끌려온 영희(서미지) 그리고 수많은 이 땅의 소녀들과 기차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 한가운데에 버려지게 된다. 이 곳에서 이 땅의 소녀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 그리고 여성으로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이 영화는 과장된 것도 아니며, 역사적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데 심금을 울린다. 또한 살아 돌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에 깔고 제작되었다. 그들의 삶은 한마디로 시궁창보다도 못한 삶이었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이며, 돌아오지 못한 이 땅의 소녀들의 슬픈 역사의 증거물이다.

이 땅의 소녀 20만명은 전장의 한가운데로 끌려가 238명만 살아서 돌아왔다. 그 중에서 현재 생존자는 20여명이며, 이들은 국내외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본군의 잔악상을 증언하고 있다. 얼마 전 정신대의 실상을 세계에 처음 알린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의 마지막 절규도 이 땅의 소녀 20만명의 한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몇 명 살아 있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은 당시의 아픔이 가슴속 흉터로 남아 일본군의 잔인함을 증언하고 있다.

7만5천2백70명의 후원으로 제작된 영화 <귀향>은 오늘 일본의 패권주의와 군국주의 부활과 때를 맞추어 만들어졌다는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진 국민영화라는데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 우리정부와 일본정부간에 이루어진 위안부 협상은, 피해 당사자가 빠진 협상이었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국민들은 묻고 있다. 일본군 정신대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의 고통과 아픔을 몰각한 협상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에서 나타났듯이 “정신대에 강제로 끌려간 소녀들 중 정신이 나가지 않고, 신고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식을 가진 이 땅의 젊은이들의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일본군에 끌려간 소녀들의 아픔을 증언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한의 역사’의 증언자이며,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소녀 20만명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귀향’이다. 이 땅의 친일 지식인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 꿈 많은 소녀들을 향해 정신대로 나갈 것을 설득하고,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열었다. 또 이 땅의 젊은 청년들을 향해서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될 것을 강요했다.

한마디로 친일 지식인들은 육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꿈 많은 소녀와 청년들을 전장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그 중심에 기독교 목사와 기독여성지도자가 상당수 끼어 있었다. 20만명의 소녀들 중 살아서 돌아온 소녀는 238명뿐이다. 나머지는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것도 증거인멸을 위해서였다. 이를 은폐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인과 지식인의 모습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오죽하면 영화 <귀향>을 제작하면서, 감독이 국민들에게 구걸을 했겠는가. 이 영화는 정신대로 끌려간 이 땅의 소녀 20만명의 ‘한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 ‘한의 소리’는 민족해방 73년을 맞은 오늘, 하늘에 사무친다. 그렇다. 육의 탐욕에 사로잡혀 있는 이 땅의 지식인들은 돌아오지 못한 20만명의 소녀들의 ‘한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이들의 ‘한의 소리’를 들어야 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하며, 신사참배에 적극 참여, 배교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한 교회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간간히 발표되는 성명서는 행동하지 않는 교회의 양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귀향>이 증언하고 있듯이, 돌아오지 못한 이 땅의 소녀, 정신대 할머니는 이런 교회에 호소하지 않았다. 그들은 ‘만신’을 찾았다. 만신은 <귀향 굿판>을 벌여 돌아오지 못한 소녀들의 ‘한’을 풀어주었다. 우리는 일제 36년 피압박민족으로 살아 왔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을 용서해서도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신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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