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우리는 왜 죄인인가(?)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고, 용서 할 줄을 몰라서 죄인이다.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인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시간과 장소에서 이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이 어찌 되었건, 윤리와 도덕이 어찌되었건, 먼저 먹고 보자는 주장이 바로 악마의 모습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은 40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도, 이웃의 아픔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를 않는다, 혼자 먹고 잘살려고 한다. 혼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참교회이며, 참교인인 농촌교회와 농민들의 아픔에 함께 할 줄을 모르는 것은 물론, 함께 사랑하며 기뻐 할 줄을 모른다. 민주주의를 탄압하며, 독재자들을 위해서 충성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민주주의의 선구자인 것처럼 호도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 일부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모두가 자기 안에 갇혀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소망하지를 못한다. 세상과 타협하며, 온갖 혜택을 누린다. 

우리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심장이 완전히 굳어 버렸다. 그래서 이웃의 기쁨과 아픔에 참여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에 영혼의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우리 속에 영혼의 포도주가 가득하다면, 우리의 삶은 생명력이 넘칠 것이다. 이 사회에 정신적인 포도주가 흘러넘치면 모든 사람의 삶이 훈훈 할 것이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도둑질해서가 아니다. 폭력을 행사해서도 아니다. 폭력도, 절도도, 이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죄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랑이 메말라 버렸다. 인간 모두는 사랑이 실종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보다도,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지중해를 건너는 이웃을 받아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에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도 일어난다. 하나님의 평화가 깨지고 있다. 생명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하나님도 만나고, 인간도 만난다. 요한1서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인간이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인간도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랑도 유지될 수 있고, 평화도 유지될 수 있다. 인간의 참모습대로 살려면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사랑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천지창조이후 지금까지 인간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잊고 살았다. 믿음, 소망, 사랑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성서는 이렇게 교육하고 있다. 

오늘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다툼을 보라. 연합단체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라.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한국교회는 분명 사랑이 실종되었다. 수 십 년동안 함께 같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던 교인간의 다툼은 나를 개방해 너를 사랑할 줄 모르고, 상대방을 받아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한번 갈등이 시작되면 100여건에 달하는 소송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헌금이 소송비용으로 새어 나가고 있다. 이것이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이다. 사랑이 없어서 여성교인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르고, 세습도 일어나고,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에 다툼도 일어난다. 교회의 재산을 탈취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걱정한다. 종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찾지 않는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 그리고 일치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없다.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과 세상 사람들을 향해 목회자들은 비난하기에 바쁘다. 이러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랑을 해보지도 못하고,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육신은 살아 있으나, 영혼은 죽은 사람이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