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3.1만세운동, 새로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독교 독립운동을 재점검한다(끝)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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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7  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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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기층민중의 저항운동

본지는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독교 독립운동을 점검한다 1.2.3>을 통해 기독교 독립운동을 민족사적, 기독교사적 입장에서 조명하려고 노력했다. 분명한 것은 한국기독교의 민족해방운동과 독립운동, 그리고 비폭력평화운동은 선교사들과 무관하게 한민족의 내면에 민족의식이 존속되어 왔다는 것을 조명했다. 특히 기독교의 민족운동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저항운동이며, 민족해방운동이고, 비폭력평화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3.1만세운동은 기층민중인 기독여성, 기독농민, 기독학생, 백정, 기생, 떠돌이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운동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든 기층민중들의 운동이 그랬듯이 3.1만세운동 역시 지식인들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그것은 애굽의 파라오 밑에서 고난 받던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운동도 그랬다. 일제하에서 학생들도 지식인들을 믿지 않았다. 때문에 학생들은 33인의 독립선언문과는 상관없이 별도의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1919년 4월1일 서울역 만세운동을 계획했던 것이다. 전국의 학생들은 당일 기차를 타고 상경해 서울역에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서울역 만세운동이 전국교회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거의 기독학생이었다. 이들은 서울역 거사에 참여하고, 귀향해 교회로 들어갔다. 교회의 지도층 인사들과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교인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다. 오늘 한국교회가 이들의 가치를 인정하기 보다는 33인에게 맞춰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1919년 3.1만세운동에 앞서 일본에서 일어난 2.8독립선언에 국내의 학생들이 영향을 더 받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3.1독립선언문도 일본 동경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문 보고, 지도층 인사들이 계획이다. 당시 33인은 “일본서 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는데, 지도층에 있는 인사들이 보고만 있을 있느냐”며, 3.1독립선문을 만들었다. 이 독립선언문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맞춰 국내외에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이 선언문은 외세의 간섭 없이 단군 이래 조선이라는 나라가 4천년 넘게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는 선언이었다.

3.1독립선언은 파리강화회의에 맞춰 유럽을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 소련 연해주에서 선언되었으며, 이 때 아시아의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들의 식민통치를 받는 국가에게 해당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국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는 상관이 없었다. 일본은 세계 5대 강국중 하나로 우뚝 올라섰다. 국제연맹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다.

오히려 파리강화회의에서 참석한 조선 대표 김규식 등의 조선의 독립을 알리는 선언을 방해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서울역 만세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교회를 중심으로 계속되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3.1만세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을 ‘불순분자들의 반정부운동’으로 규정했다. 이 때 민족의식을 자각한 지식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일제의 신사가 남산에 세워졌다. 한국교회는 서양기독교의 관념에 갇혀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으며, 민족주의진영을 후원했다. 이 같은 관념이 그대로 오늘날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으며, 3대 세습을 이어오고 있는 북한 정권과는 어떠한 협상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인 대부분은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예수님의 ‘샬롬’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로마팍스’를 말한다. 그리고 전쟁을 하자고 한다.

신사참배, 하나님께 배교행위

조선총독부는 1938년 2월까지 신사참배에 불응한 기독교계 학교를 폐교시켰다. 이 여세를 몰아 총독부는 교회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회유와 강압의 악랄한 수법을 동원해 강제적으로 신사참배를 참여케 했다. 여기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제의 강압과 회유정책에 속속 넘어갔다. 1938년 9월9일 장로교 제27회 총회를 최후로 신사에 굴복함으로 한국교회는, 씻을 수 없는 범죄를 하나님 앞에 저질렀다. 한국교회는 일제에 의해 신앙의 자유와 신앙의 양심을 유린당한 것이다.

신사참배는 하나님을 배반한 배교행위 임에 틀림없다. 장로교 평양노회는 1938년 2월9일 최초로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인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뒤이어 동년 9월9일 장로교 제27회총회가 개회될 때까지 전국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범죄를 범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일본 국가주의에 의해 유린당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목회자 대부분은 여기에 항거하기는커녕, 신사참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총독부는 친일기관지인 ‘평양기독교친목회’가 제공하는 정보와 건의에 따라 전국장로교가 신사참배를 시행토록 하기 위해 기독교친목회가 꾸민 각본대로 평양, 평서, 안주노회의 대표를 불러 신사참배 결행 안을 제안, 동의, 제창토록 하는 각본을 꾸몄다. 그리고 내약을 받았다. 1백여명의 고위경관과 수십 명의 무술경관 포위 속에서 시작된 장로교 제27회 총회는 서기의 성명서 낭독과 친목회원의 신사참배 즉시 실행의 긴급동의로 신사참배가 결의됐다.

당시 신사참배를 반대한 선교사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평양노회장 박응률은 평양, 평서, 안주 3개 노회 32명을 대표해서 “신사참배는 일본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성명서를 제출하고, 평서, 안악노회 노회원들의 제청을 받아냈다. 블레어를 비롯한 황해노회 장흥진, 빌 등의 선교사는 장로교 헌법에 위배된다며, 반대 결의문을 총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일경의 압력에 의해서 상정조차 못했다. 이날 부회장 김창길의 안내로 평양신사를 참배했다.

감리교는 이에 앞서 9월3일 총리사 양주삼의 이름으로 신사참배 결행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감리교는 천주교회와 함께 어떠한 저항도 없이 일제에 자진 굴복했다. 여기에서 한발 더나가 한국교회는 일본교회의 보조에 맞춰 내선교도 일체라는 명분을 내걸고, 기독교 내선일체, 황국신민운동을 벌였다.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함으로써 하나님께 배교의 잘못을 범했다. 그리고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송건호 <한국현대사> 신학연구소)

이는 곧 조선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는 일인들도 참여했다. 동연합회는 교파주의에 만연되어 있던 한국교회가 처음으로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하나가 되었다. 이 연합회에 솔선해서 참여한 한국측 인물은 정춘수를 비롯하여 김우현, 차재명, 구자옥, 김종우, 원익상, 장홍범, 윤치호, 이명직, 김활란, 신흥우, 오경선, 유옥겸, 이동욱, 함태영, 황종진 등이다. 또한 교회지도자들은 ‘정신연성소’에서 정신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정신교육을 받은 후, 전국을 돌며, 교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밖에도 김활란은 애국여자단을 조직, 조선의 여성들에게 정신대로 나갈 것을 강연하고 다녔으며, 정춘수를 비롯한 기독교지도자들은 청년들을 향해 일본군에 입대할 것을 강연했다. 또 이들은 교회의 종을 떼어 전쟁물자로 내놓았으며, 일본군 전쟁 물자를 위해 교인들이 드린 하나님의 헌금을 아낌없이 내 놓았다. 지도자들 중 개인적으로 항공기를 헌납한 인사도 있었다.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하자

이밖에도 기독교청년회를 비롯한 문인단체들이 속속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문화정치에 동화됐다. 여기에는 기독교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신사참배가 국민의례로 해석하고, 황국신민으로 당연한 의무임을 강조했다. 이것도 모자라 한국의 기독교세력은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찬송가와 공과를 분열시켰다. 일본 식민지세력과 결탁, 6개의 재단법인을 얻어내기도 했다. 이런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가 지금도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맘몬과 바벨을 숭상하며, 예수님을 호화로운 교회당, 시멘트 건물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이제라도 교회는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가야 한다. 3.1만세운동 당시 기독교인들이 민족의 아픔이 있던 곳으로 나갔듯이 말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시간과 공간인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은 분단의 현장이 아닌가(?) 그 곳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당시 지식인들은 일제의 폭악에 대해서 3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민족적 양심은 살아 있으나, 저항할 용기가 없는 자이고, 다음은 일제에 아부하며, 권력의 주변을 맴돈 자이다. 3.1운동이후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이 길을 택했다. 마지막으로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민족적 양심을 지킨 자이다. 이들 중 한파는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가 형무소에 갖고, 한파는 완전히 세속을 떠나 은둔생활을 했다.

8.15 해방이 4-5년만 빨리 왔어도, 지도층 인사들은 친일파라는 비난을 듣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가의 말은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이다. 친일파는 한일합방 이전부터 있었으며, 지금도 친일파의 활동은 멈추지를 않고 있다. 일본군국주의 부활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정신대문제 등이 표면으로 떠오르고 있는데도, 친일세력들의 참담하고 쓰레기 같은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또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애국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땅의 도로에는 일본차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

여기에다 요즘 일고 있는 일본의 패권주의와 군국주의 부활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질서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지나 않을까 히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식민지세력에 의해 끌려간 전신대 할머니들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일본 우경화의 바람은 대한민국을 향한 또 하나의 침략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대한민국 기독교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 정신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향해 내뱉는 모습은, 한마디 한심스럽다.

일본의 침략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리는 인사도 있다. 모 교단의 총회장을 지낸 한 목사는 대중 집회에서 “일제시대 정신대로 끌려갔던 소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자원했다”고 말했다. 이에 300여명의 목사와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한국교회의 교인과 목사의 역사의식이 이 정도라면, 이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바로 십자가와 태극기를 앞세운 한국기독교 목회자이며, 교인이라는데 부끄럽다.

누가 이렇게 막말을 내뱉고, 여기에 동조하는 교인들을 보고 교회에 나가겠는가(?) 일제 36년동안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희생당한 애국자들의 ‘한의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는데 이들의 한을 누가 달래주겠는가. 영화 <귀향>을 보라. 오죽하면, 살아 돌아온 정신대 할머니가 교회를 찾아가지 않고, 무당을 찾아가 동무의 한을 풀어달라고 했는가(?) 그 대답은 한국기독교 목사와 교인들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진정한 한의 사제는 목사도, 스님도, 신부도 아니었다. 진정한 한의 사제는 무당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한국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영화 <귀향>을 좌편향 영화라고 매도한다.

3.1운동, 새로운 나라를 갈망한 민족운동

3.1만세운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운동은 피압박민족의 새로운 나라를 향한 비폭력평화운동이며, 민족해방운동이다. 한국기독교계에서 3.1만제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행사와 함께, 교회사적으로 재평가의 움직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을 몇 명의 이익과 명예,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안타깝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고 모세에게 명령했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서 전체를 지배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제국에서 해방시켰다는 신앙고백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신앙이다. 그리고 억압과 착취가 없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갈망했다. 한마디로 통치와 종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장 7-10절)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제국의 압제와 수탈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에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앗시리아와 바벨론제국에 의해 좌절됐다. 나라 잃은 백성이 되고 말았다. 이집트, 앗시리아, 페르시아, 시리아, 로마와 같은 대제국에게 짓눌리어 1천여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아우성쳤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간구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민중을 선동했다는 정치적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그 후 예수님이 나타나 “때가 다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외쳤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억압과 수탈을 당하는 백성들 속에서, 이들과 함께 자유롭고 평등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100년전 전국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 역시 일본식민지세력의 수탈과 억압에 항거하여 일어난 독립운동이다. 일제의 총칼에 죽임을 당하면서도, 나라를 찾으려는 민족자결의 민족운동,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아니 힘없고 천박한 조선백성의 새로운 나라를 향한 하나님나라운동이었다. 3.1만세운동은 길 삼해서 가족들에게 옷을 입힌 민족의 어머니인 기독여성, 밭을 갈아 가족들에게 밥을 먹여주던 기독농민, 민족의 희망인 학생, 청년들이 중심된 민족적 항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기독교가 표방한 이념 새로운 희망

낡고 무력하고 경직된 조선왕조가 수명을 다해 갈 무렵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는 남녀평등과 사민평등의 이념을 앞세워 선교했다. 타락한 이조 말엽의 봉건왕조에 비하면, 기독교가 표방한 이념은 새롭고 희망에 찬 것이었다. 기독교는 급속히 서민 속으로 파고들어 갔으며, 새로운 문물과 이상을 추구하던 지식인들이 앞을 다투어 교회로 몰려 왔다. 그것은 기독교선교가 새로운 나라에 대한 이상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명을 다한 이조 봉건 왕조의 압제와 수탈에 신음하던 가난한 백성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당연했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또한 이들이 생명의 담지자로서, 인족의 어머니로서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분명히 3.1운동은 조선 백성의 비폭력 평화운동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나라의 도래를 갈망하던 한민족에게 역사적 큰 의미를 갖는다. 독립선언서는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라”라고 선언하면서, 맨몸과 맨손으로 일제의 총칼에 대항했다. 비록 일제의 칼에 몸은 찢기고, 총에 가슴에 구멍이 나 목숨을 잃을망정, 정신적, 도덕적으로는 승리를 거두고, 기금까지 그 정신이 살아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총칼로 조선백성을 괴롭힌 식민지 세력을 기념하거나, 찬양하는 사람은 없다.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서 아무 저항 없이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의 삶과 죽음은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며, 평화의 상징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고난을 통해서만이 하나님나라가 도래한다고 믿는다. 로마 제국에서 박해를 받던 교회들도 신앙고백으로 항거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도 말로써 그 시대의 불의와 폭력에 맞섰다.

남북한은 날카롭게 대처하며, 적대적인 관계 속에 있었다. 분단의 벽은 높고, 단절은 깊다. 이 땅의 평화통일을 이룩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 3.1만세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라면, 남북한 민족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 민족의 화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나라는 혼자갈 수 없다. 나와 너, 그리고 그가 함께 가야 한다. 남북한 민족이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3.1만세운동의 완성이 아닐까.

그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꿈꾸었고, 예수님이 선언한 하나님나라, 새로운 나라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고난과 죽음도 불사해야 한다. 우리는 용기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십자가 달리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에 갈 수 있다. 조선의 백성들이 그렇게도 갈망했던 새로운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우리의 믿음과 고난을 통해서 한국교회, 아니 한민족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다가오는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인 3월, 이 땅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고 있다. 이제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삶, 조선백성의 고난과 삶속에서 기대해 보자. 그리고 3.1만세운동의 역사적 의미, 민족적인 의미를 재조명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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