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호에서 ‘3•1운동 100주년’을 특집으로 다룬 <기독교사상>이 3월호 주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특집으로 선정해, 교회 안에서의 신앙’에 갇혀 있지 않았던 선배 기독교인들의 민족적 행적이 오늘날 개인적 구원과 신앙에 함몰된 교계에 경종을 울리기를 기대했다.

먼저 <기독교사상> 3월호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내수 소비를 활성화시킨다는 이유로 임시공휴일이 지정된 경우가 그간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번처럼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기억한다는 목적으로 추진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면서 “임시공휴일 추진이 없었다면, 과연 임시정부가 수립된 그 날짜를 기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책은 “3•1운동을 계기로 국내외에서는 여러 임시정부가 생겼고, 이는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쳐 활동을 이어갔다. 주권을 잃은 상황에서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해외에서 활동하던 임시정부는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또 그들은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토대로 해방 이후 설립된 대한민국이 헌법 전문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는 내용과 이유를 더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활동 또한 다시금 조명되고 기억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특집-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에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용달 소장과 단국대 사학과 한시준 교수, 숭실대 김명배 교수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무엇을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관계 ∆상해 임시정부 수립과 기독교 민족운동가들 등의 주제로 가지고 참여했다.

이 세 전문가들은 특집에 소개된 글을 통해 100년 전 임시정부의 실체, 임시정부와 오늘날 정부의 관계, 당시 기독교인들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전문가들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4월 11일을 기억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할 것”이라며 “이 역사를 정확히 짚어내고 기억한다면 해마다 반복되는 건국절 논란 또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달 소장은 3•1운동 후 국내외에서 생겨난 여러 임시정부들 중 3곳의 성립 과정과 성격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김 소장은 여러 임시정부들 중 3곳에 대해 “연해주에서 수립된 ‘대한국민의회 임시정부’(일명 러령정부, 3월 21일), 인천에서 조직된 소위 ‘한성정부’(4월 초), 상해에서 성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일명 상해 임시정부, 4월 11일)가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속에서 김 소장은 세 임시정부가 어떤 절차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지, 또한 임시정부 운영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논한 후 세 정부가 어떻게 하나로 통합되었는지를 설명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임시정부의 역사적 모습을 재현했다.

또 김 소장은 임시정부의 주요 활동들을 소개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①일본제국주의 식민지 국가와 정부를 거부하고 한국인 스스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임시정부’를 세웠다는 사실 ②민주주의의 역사를 처음으로 열었다는 점 ③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꿈과 희망을 주었다는 점 ④현재 대한민국의 뿌리이자 연원이라는 점 등 네 가지로 정리했다.

한시준 교수는 1919년에 설립된 ‘임시정부’와 오늘날의 ‘정부’와의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한 교수는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먼저 결정된 이후 정부의 조직 형태로 국무총리를 수반으로 한 6개부서가 결정되었으며, 그다음으로 국무총리 및 각 행정부서의 책임자를 정하는 국무원 선출이 이루어졌고 이어 헌법 제정이 이루어짐으로써 임시정부 수립 절차가 마무리되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오늘날 국회와 거의 유사한 임시의정원의 구성과 역할, 다양한 정부의 체제(국무총리제, 대통령중심제, 국무령제) 경험, 연호의 사용 등을 설명하며 “임시정부의 설립과 이후 활동을 통해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정으로 변화했다”고 그 의의를 짚었다.

마찬가지로 한 교수는 1948년 오늘날의 정부가 수립된 과정을 살펴보며 <제헌국회 속기록>의 기록, 제헌헌법 전문의 내용, 동일한 연호의 사용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명배 교수는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논했다.

김 교수는 중국에서 활동한 신한청년당 및 여운형의 활동 내용, 손정도와 현순 목사의 국내 3•1운동 준비활동 등을 소개하며 3•1운동의 추동력과 추동 세력이 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이어 김 교수는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서 현순의 상해 독립임시사무소 활동을 설명하고, 임시정부의 구성원 등을 자세히 논했다. 또 임시정부 수립에 기독교 인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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