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난 지 3 개월이 되었을 때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나는 … 네 하나님 야웨라.’<개역개정> 이 문장을 현재처럼 이해하려면 몇 가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2인칭 단수 ‘네 하나님’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60만 명을 칭할 때 2인칭 대표 남성 복수 ‘너희’(켐)가 아니라 남성 단수 ‘너의’(카)로 표기한 것이다. 히브리어 인칭대명사는 2인칭 단수와 복수는 물론 심지어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사실 로마자 계열의 언어에서 대부분 2인칭 단수와 복수의 형태가 동일하기 때문에 번역에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말 번역의 경우 2인칭 성별 구분은 없으나 ‘너’와 ‘너희’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공동번역>과 <새번역>은 히브리어 단수를 우리말 2인칭 복수 ‘너희’로 옮긴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웨다.’<공동번역> ‘나는 …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새번역> 아마도 두 번역이 본문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복수형으로 번역한 것은 내용 동등성의 원칙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단수’로 인정하기보다 복수 ‘너희’를 선택하여 논리적 일치를 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어 성서가 이스라엘 전체를 향하여 ‘네 하나님’이라고 굳이 단수를 취한 이유가 있을까?

첫째는 2인칭 단수로 취급하여 대표성을 부여하는 경우다. 부족집단이나 특정 공동체를 가리키는 전형적인 지칭 방식이다. 예컨대 한 부족의 족장은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를 대표하게 된다. 모세는 출애굽을 이끈 지도자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중재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며 중재자로서 그 집단을 대리하는 대표성을 갖는다. 본문에서 ‘네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모세의 하나님을 가리키지만 결국은 이스라엘 전체의 하나님이란 사실에 도달한다. 개인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대표성을 확보한 것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을 2인칭 단수로 특정한 것은 복수로 간주할 때 개인을 간과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설교자에게 청중은 개인인지 집단인지 선택적 대상이 된다. 항상 이원적으로 나눌 수 없지만 후자를 대상으로 여기면 개인의 영역이 줄고, 전자를 향하여 설교하면 공동체의 입지가 좁아진다. 다시 말해서 설교가 개인에게 집중하면 오목렌즈처럼 한 영혼에 모아지는 집중구조를 띠고, 집단을 향하면 볼록렌즈처럼 확산구조의 대중설교가 된다. 본문에서 출애굽 공동체를 ‘네 하나님’으로 밝힌 것은 한 개인이 자칫 집단으로 취급되어 한 개인의 소중함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한 장치다. 출애굽은 사회적 사건이어서 일차적으로 공동체를 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개인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설교자는 청중이 아무리 많다 해도 한 사람을 대하듯 선포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너희’ 하나님은 개인과 거리가 먼 집단일 수 있으나 ‘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너희 하나님’이 아니라 ‘네 하나님’인 이유는 또 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분으로서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계명의 실천을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상대를 상호 인정하는 계약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야웨는 그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출 6:7; 레 26:12; 사 40:1). 계약관계는 ‘나’와 ‘너’라는 인격적인 출발점 위에 상호적인 책임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2인칭 단수 ‘네 하나님’에는 필사자의 실수가 아니라 야웨 하나님이 출애굽 공동체를 대하여 인격적 만남과 계약적 관계, 그리고 상호적 책임을 반영하고 있다.

위와 같이 출애굽 공동체를 2인칭 단수로 지칭한 데는 신학적으로 분명한 근거가 있다. 십계명 서문에서 ‘나는 네 하나님 야웨’라고 명시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과 일대일의 계약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십계명의 각 조항은 모세로 대표되는 출애굽 당사자 개개인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순종하고 지켜야할 의무가 된다. 여기서 2인칭 단수 ‘너’는 엄밀하게 개인에 한정되지 않고 본질적으로 연대적 책임과 심리적으로 일체감을 갖는 공동체를 가리킨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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