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오늘 우리사회는 외모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보니 오늘 우리사회는 속보다도, 겉을 포장하는데 모든 것을 투자한다. 성형도 서슴없이 한다. 성형한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비슷하다. 겉은 번 지른 한데, 속은 엉망진창이다. 미국의 어느 억만장자 노부부가 있었다. 이들에게는 자식이 없어 긴 여생을 조금 쓸쓸하게 보냈다. 그래서 노부부는 그 많은 재산을 유익한 일에 쓰고 싶었다. 하루는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전 재산을 다음 세대를 위해 교육사업에 헌납합시다"
할아버지는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다. 다음 날 부부는 전 재산을 기부하기 위해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을 찾았다. 정문을 막 들어서려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두 노인을 본 수위는 노부부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불친절 하게 따지듯이 물었다.

“노인양반들 지금 어디로 가시려고 하는 거요?"
“총장님을 좀 뵈러 왔는데요"
수위는 아주 경멸하는 태도로 멸시하듯이 대답했다.
“총장님께서는 댁들을 만날 시간이 없소!"
노부부는 수위의 태도에 불쾌 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물었다.
"대학교를 설립하려면 돈이 얼마나 듭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댁들 같은 사람들이 그건 왜 묻습니까?"

마음에 상처를 받은 노부부는 기부하는 것을 없던 일로 하고, 직접 학교를 짓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학교설립을 위한 절차를 밟았다. 그들이 가진 전 재산을 투자 하여 설립한 대학이 바로 지금 미국에서 제일가는 대학 중 하나인 '스탠포드대학'이다. 한편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하버드 대학에서는 그 날의 잘못을 반성하며 아쉬워했다. 그 후부터 하버드 대학 정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붙어 있게 되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Don't show favoritism!)"

우리는 대부분 외모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마음대로 판단하여 엄청난 실수를 하고 후회한다. 오늘 대부분의 교회는 떠돌이들이 교회에 오면, 1000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고, 내 보낸다. 혹 떠돌이 한 명이 예배에 참석하면, ‘냄새 난다’며, 그 옆자리를 피해서 앉는다. 이 떠돌이는 교회에 대해서 실망하고, 다시는 교회를 찾아오지 않는다. 떠돌이는 예수님이 가장 사랑한 사람이다. 성서의 흐름은 떠돌이들의 해방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받아 주는 것은, 그 사람이 낮아지고 겸손해 지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애써 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린 마음으로 남의 말에 경청 하려 든다면, 그 사람 곁에는 늘 사람들이 머물러 있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다. 벽도 없다. 벽도 밀면 문이 된다. 이 문을 열면, 너와 나의 마음이 열려 고인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 고인물은 생명수가 되어 흐른다. 고인물은 섞게 마련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진정 강해지려면, 상대방의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의 실행 유무를 결정해 한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며, 된 사람이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낮은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 교회는 닫혀 있다. 이웃의 아픔에 참여할 수 없다. 교회 안에 갇혀 썩어가고 있다.

"외모는 행복과 풍요로운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진정한 외모는 내면에 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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