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면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커지게 됐다. 이번 북미회담은 지난 싱가포르 1차 회담에서 합의된 과제들, 즉 북한 비핵화에 대한 가시적이고 실천적인 조치를 합의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래서 회담 전부터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은 물론 종전선언과 함께 제제 완화를 통한 남북 간의 교류 활성화를 기대하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회담 막판에 분위기가 급반전되면서 평화로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를 다시한번 보여준 셈이 되고 말았다.

회담은 초반까지만 해도 좋은 분위기 속에서 기대했던 이상의 ‘빅딜’이 이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낙관적인 전망이 주를 이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장소를 베트남 하노이로 정한 것도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전쟁 후에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이보다 더 나은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북측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북한은 북한대로 전략적으로 최대한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 회담을 이끌어 단숨에 경제 제재의 실타래를 푸는 성과를 거두겠다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회담에 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자 미국은 이미 다 알려진 영변핵시설이 아닌 또 다른 지역의 핵시설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북측을 압박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드에 당황한 북측이 전략적인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회담 결렬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결국 영변 핵시설 폐쇄라는 패 하나만을 손에 쥐고 완전한 제재 해제라는 큰 꿈에 젖었던 북측의 도박은 판이 깨지는 동시에 꼬박 이틀이나 걸려 기차를 타고 온 보람도 없이 빈손으로 평양행 기차에 몸을 싣는 신세가 되고만 것이다.

최근의 미국 내 정세 흐름으로 볼 때 미국이 초강경 대북 압박으로 판을 깨리란 예측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인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하게 서둘다가 북측의 노련한 전략에 말리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트럼프 진영은 만약 이번 회담에서 확실하게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판을 깨는 게 더 낫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업가 기질의 트럼프가 대선까지 아직 시간과 기회가 많이 남은 시점에서 굳이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까지 밑지는 장사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북미회담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날벼락을 맞은 우리 정부다. 정부는 그동안 북미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하며 만약 ‘빅딜’이 성사돼 종전선언 등 가시적 조치가 이뤄질 경우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가동, 남북 철도 연결사업 등 굵직한 남북 경협의 과제들을 한꺼번에 풀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1운동 백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시점에 맞춰 남북 평화와 화해라는 큰 틀 안에서 미래 청사진을 그려나가던 정부로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이어 3월말 경 북한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추진하려던 계획부터 틀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과 북한이 다음 회담 일정조차 기약하지 않은 채 판을 깸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구도가 한층 복잡 미묘해졌다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무조건 제재완화 선물을 받아내 꽉 막힌 경제의 숨통을 틔우려 했던 북한이 실망감과 회담 실패에 대한 화살을 외부로 돌려 그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3월 6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이다. 이번 사순절은 이처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고조되는 시점에서 시작돼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이 땅에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깊은 성찰하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절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