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 민족통일의 길로 가자”3.1만세운동의 완성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노래하는 것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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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15  10: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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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강제노역에 고난당하는 한민족.

3.1만세운동의 완성 즉 민족통일 구현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를 비롯한 각종 포럼에서, “3.1만세운동의 완성은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이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는 달리 일부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3.1만세운동의 역사를 왜곡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해외서 3.1독립만세운동에 주도했던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김규식 선생과 같은 인사들은 3.1만세운동을 반대했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고 역사를 왜곡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것은 해방 후 이들이 민족주의 진영에 서지 않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거나, 아니면 사회주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운형 선생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 선생 등을 파견해 대한독립을 세계만방에 알리게 했다. 당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각 민족 집단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그 귀속과 정치 조직,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고, 타민족이나 타국가의 간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김규식 선생을 파리강화회의에 보냈다. 또 이광수를 일본에 보내 대한독립을 선언하게 했다. 그것이 2.8독립선언이다. 국내외서 3월 1일을 기해 일제히 대한독립을 외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사가들의 역사기록이다. 그럼에도 여운형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사회주의 또는 중립적인 진영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분명 3.1만세운동은 한민족의 해방운동이며, 독립운동이고, 비폭력평화운동이다.

오늘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여운형 선생, 김규식 선생 등과 같은 애국자들을 부정하고, 역사를 왜곡하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있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역사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기록하고, 교육을 그렇게 받은 결과, 관념이 만들어낸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사회주의 계열에 있었던 애국지사들을 오늘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부정한다. 안타깝다.

오늘 일제 36년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부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기에 바쁘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분명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던 독립군들을 향해서 총을 쏜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 한국교회는 역사를 직시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진다. 오늘 보수적인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관념’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에 방해가 될 뿐이다. 3.1정신에서 크게 이탈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억압과 착취가 없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는 명을 모세에게 주었다.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나라를 수립한다는 이야기는 구약성서 전체를 지배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제국에서 해방시켰다는 신앙고백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기본적이며, 중심적인 신앙고백이다.

때문에 130년전 이 땅에 처음 들어온 복음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눌린 자들에게 희망일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대한 제국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수립하려고 했다. 그러나 앗시리아 제국과 바빌론 제국에 의해 좌절되고 나라 잃은 백성으로 1천년을 유리방황하며, 살아오고 말았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도 가난한 민중들이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나 굶주림과 질병이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나라를 이루는 운동이었다.

기독교의 가치는 비폭력 평화운동

이스라엘 백성은 1천년동안 나라를 잃고, 신음하면서도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 실현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않았다. 로마 치하에서 나라를 잃은 백성들을 향해 세례요한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다. 요세프스는 “세례요한은 민중을 선동했다는 정치적 죄목으로 처형되었다”고 했다. 세례요한이 처형된 후 예수님은 “때가 다되어 하나님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외쳤다.

100년 전 이 나라의 눌린 자, 여성, 학생, 떠돌이, 기생, 농민, 백정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일본 식민제국의 압제와 수탈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던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민족해방운동이며, 비폭력평화운동이었다. 일본 식민지세력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하고, 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나라를 찾으려 했다. 신친지를 갈망하던 피압박민족의 해방운동이었다.

분명 기독교는 선교초기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 말에 들어와 가렴주구를 일삼는 부정부패한 관리들과 허례허식을 일삼고 명분만을 찾는 무능한 양반들이 지배하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희망으로 다가 왔다. 특히 구약의 출애굽 사건은 한민족에게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신천지를 갈망하게 했다. 한마디로 조선왕조에 희망을 걸기 어려운 시기에 기독교는 서양문물과 더불어 이 땅에 들어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었다.

당시 기독교는 남녀평등과 사민평등을 앞세웠다. 눌린자 여성들과 노동자, 농민, 백정, 기생, 머슴, 떠돌이들에게 희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은 낡고 무력하고 경직된 조선 봉건왕조에 어떠한 희망도 걸지 않았다. 나라는 도탄에 빠지고, 민족정기는 사라져 버렸다. 타락하고 쇠퇴한 이조 말엽의 봉건 왕조 아래서 한국에 들어 온 기독교가 표방한 이념은 보잘 것 없는 사람, 가난한 민중들에게는 새롭고 희망에 찬 종교가 아닐 수 없었다.

기독교는 급속하게 대중들 속으로 피고 들었다.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던 지식인들은 기독교를 신봉하기 시작했다. 특히 눌린자, 여성들에게 기독교는 새로운 나라에 대한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이조 봉건 체제에서 압제와 수탈에 신음하던 농민, 노동자, 떠돌이, 백정, 기생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들은 당시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며, 그 누구보다도 민족을 사랑했다.

기독교인들의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은 <3.1 독립선언문>에 그대로 담겨 있다. 기독교인들은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기독교인은 31만8천여명(천주교인 포함)이었다. 1년 동안 기독교인에 의해서 일어난 만세운동 220여 차례로, 매일 기독교에 의해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 장로교 선교사들이 본국에 보낸 선교보서가 증언하고 있다.

“1919년 3월에서 10월까지 336명의 장로교 교역자가 연행되었다. 남신도 2,125명, 여신도 531명이 체포되었다. 1918년 장로교 목사가 169명, 목사후보자가 102명이었다”

장로교 지도층 전체가 3.1만세운동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 왕조를 무너트린 것은 조선의 민중이 바라는 새로운 나라가 아니라, 일본 식민제국의 식민통치였다. 지지리도 못나고 가혹한 왕조였다. 그러나 외세에 의해 그 못난 나라마저 잃고 이 민족에게서 차별과 수탈을 당하던 보잘 것 없는 민중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1만세운동은 비폭력평화운동인 동시에 저항운동이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며, 투쟁해 온 한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맨몸과 맨손으로 일제의 총과 칼에 대항해서 비록 몸은 찢기고 목숨은 잃었을망정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승리를 거두었다.

3.1만세운동 정신적, 도덕적 승리

3.1정신은 살아 우리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오늘 우리가 3.1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고, 당시 피압박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때 비무장인 한민족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았던 일제의 헌병과 경찰은 죽어 없어졌다. 오늘날 이들을 기념하거나, 찬양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전국 방방곡곡서 비무장으로 일제의 총과 칼에 맞서 싸운 것은, 정의의 싸움이이며, 피압박 민족의 해방운동이고, 저항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맨몸으로 권력층과 로마세력에 저항했다. 말로서 싸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말로 귀신을 쫓아내고 말로 병을 고쳐주었다. 말로 죄를 용서해 주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위선과 대사제들의 불의를 말로 폭로했다. 로마 군병과 빌라도 총독 앞에서 말로 진리를 증거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붙들려서 아무 저항 없이 고난을 당하셨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평화의 상징이다.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다. 예수님은 삶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나라, 새로운 나라를 선포하고, 실현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도래한다. 새로운 나라가 실현된다. 예수님은 말로써 불의한 폭력에 저항했다. 로마제국에서 박해를 받던 교회들도 신앙고백으로 항거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도 말로써 그 시대의 불의와 폭력에 항거했다.

그렇다 비폭력 저항운동이며. 평화운동인 3.1만세운동을 잇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봉사하며, 통일된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염원이며, 소원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우리는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평화통일을 노래해야 한다. 그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을 꾸었고, 예수님이 선언한 하나님나라, 새로운 길에 이르는 것이기도 하다.

사순절 기간을 보내는 우리는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고난과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 우리는 용기도 없고, 부족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았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길로 향해 갈 수 있다. 이런 새로운 나라는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와 소망의 부활을 통해, 우리의 믿음과 고난을 통해 한민족에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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