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여호수아는 가나안 입성의 교두보를 확보하자마자 모세가 당부한대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온 회중 앞에서 율법을 읽어준다(수 8:30-35/신 27:6-7). 모세는 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으라고 했을까?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다. 모세는 파라오가 노예들을 동원해 다듬은 돌로 쌓은 거대한 신전과 궁궐에 살면서 동족을 구명하려다 도망쳐 나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미디안 광야에서 야훼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아예 제단조차 없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에서 ‘내 백성을 해방하라’는 신언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가나안에 입성해서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도록 한 게 아니었을까? 백성들의 고역을 피하려 했던 모세의 생각이 그러했다고 본다.

이처럼 다듬지 않은 돌로 쌓은 제단이 점차 다듬은 돌로 지은 성전으로 변화되면서, 이제 성전은 백성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유인들이 예수를 박해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다듬은 돌로 지은 성전과 관련이 있다.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 있다”(마 12:6).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했으니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경악할 일이다.

제단에서 화목제를 드리고 함께 먹으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말씀: 먹는 행위에 정의와 사랑이 깃들게 하라는 것이다. 여기 ‘함께’ 먹는 행위 가운데 유대인, 본토인(가나안 원주민), 이방인(이스라엘 안에 사는 외국인)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수 8:32-33). 놀라운 일이다. 저 옛날 신 앞에 나온 야훼 공동체는 적어도 밥상에서만큼은 모두를 공정하게 대했던 것이다. 후에 사도 바울도 애찬에서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롬 14:20)며 먹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정의가 무너지게 말라고 했다. 바울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며 ‘그 나라’를 물질에 예속시키지 않는다. 정의, 평화, 기쁨 이 세 가지는 모두 관계 용어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이 세 가지는 성취될 수 없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성취된 정의, 평화, 기쁨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사람이 스스로 다듬은 돌이 되어 그것들을 만들려 할 때는 도리어 불행을 초래한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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