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햇살

무르팍쯤 바지 걷어 올리고
도랑물에 들어가면 
겨우내 얼음장 밑 
돌미나리 숲에 기대 살던, 
여윈 송사리도 피라미도 
보겠네, 
얼음장 밑에서 겨울 다 견뎌 낸 
작은 목숨들이 은빛 비늘 파르르 
몸을 옮기겠네, 
송사리도 피라미도 
얼음 풀린 도랑에서 몸을 옮기며,
은빛 비늘 
봄 햇살을 되비춰 내는 
반짝, 반짝 되비춰 내는 
은빛 햇살을 보겠네. 

▲ 문 현 미 시인
모처럼 하늘에 ‘은빛 햇살’이 눈부시게 비친다. 햇살을 받는 사람들의 걸음도 무척 경쾌해 보인다. 미세먼지가 자욱한 하늘 아래에선 누구도 가벼운 맘으로 걷기가 쉽지 않다. 마스크를 쓰고 뿌연 하늘을 자꾸 쳐다보다 보니 가끔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마저 잊고 지낼 때도 있다. 우리가 숨 쉬는 세상이 어쩌다가 오염된 공기에 떠 밀려 가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다가 맑고 깨끗한 공기가 흐르는 시 한 편과 마주한다. 대도시의 발전과 변화에 휩쓸려 살다보면 도랑물에 발 담그고 물의 촉감을 느끼던 때가 아득해진다. 그래도 ‘얼음장’ 같은 삶에 청량수 역할을 하는 시가 있어 잠시 숨을 편히 쉴 수 있다.

긴 겨울을 보낸 시인은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을 전해주고 있다. 시 전편에 흐르는 은빛 리듬이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무장해제를 시킨다. 누가 있어 이토록 수월하게 마음의 빗장을 풀 수 있을까. 한 편의 좋은 시가 주는 힘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의 초반부에 ‘∼보겠네’, 중반부에 ‘∼옮기겠네’, 말미에 ‘∼보겠네’와 같은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리듬이 생겨난다. 하여 시를 읽는 독자들은 약동하는 봄의 대열에 동참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비록 초미세먼지와 황사 바람과 함께 오는 봄일지라도 어김없이 언 땅을 녹이고 나무들의 물관을 윤택하게 한다. 송사리나 피라미 같은 ‘작은 목숨들이 은빛 비늘 파르르’ 떨게 하는 그런 힘이 봄속에 들어 있다. 봄이 오는 속도에 맞추어 시인도 놀라운 언어의 연금술로 파릇한 봄을 노래한다. 이 시를 몇 번 낭송해 보시라. 그러면 가슴에 ‘은빛 햇살’이 반짝, 반짝-, 모두 봄사람이 되는 축복을 경험하리라. 바야흐로 봄의 축제가 시작되고 있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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