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종 문 목사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중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 아니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두가 개인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로 인해 민족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세상은 빛이 없다. 어둠뿐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했다.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다. 자살이 생기고, 가정을 이탈하는 아이들이 생기하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곧 사회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상은 참담하다. 그렇다고 부자라고 해서 가정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부자들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가진 것을 지켜 줄 사람, 더 부유하게 만들어 줄 사람을 찾는다. 정치적으로도 이런 사람을 선호하며, 지도자로 선택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우울하고, 가난해도 우울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순절을 시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통해 빛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부자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부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이다. 한국 개신교 역시 너무 가진 것이 많아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신을 성전에 가두어 버렸다. 그래서 신을 교회에서 신이 없는 세계로 불러내야 한다고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말한다.

오늘의 세계는 불안정 속에서 있다. 언제 어디에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한반도는 긴박하다. 여기에다 일본의 아베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전범국가인 일본은 제2차 대전으로 망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통해 많은 부를 얻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를 바랄 이유가 없다.

이제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난국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노래해야 한다. 그리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인 예수님의 삶의 자리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곳은 분단의 현장이다. 우리는 평창올림픽에서 보았다. 애국가를 누가 불렀는가.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이것은 이방인이라도 함께 화해하고, 평화를 정착하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떠돌이 이방인과도 화해하는데 같은 민족인 북한의 동포들과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이사야나, 예수님은 떠돌이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선포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고난에 참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한마디로 구원받은 자가 아니다. 이들은 자기 밖에 모른다. 고난 속에서 희망을 말하는 사람만이 참 그리스도인이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아니 3.1만세운동을 주체적으로 감당한 한국교회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 한민족의 하나님을 고백하지 못한다면, 분단된 민족의 중심에 교회를 세우지 못한다면, 이 세상은 어둠뿐이며, 한민족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오늘 한국교회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을 때 교회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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