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금년 삼일절은 삼일운동 100주년인 것은 주지하는 바다. 3.1운동에서 다른 종교의 역할도 컸지만 "기독교신앙 없이는 3.1운동이 없다"는 함석헌 선생의 주장처럼 기독교가 참여하지 않았더라면 3.1운동은 일어날 수도 없었다. 이 항일 시위의 핵심과 다이내믹스(Dynamics)는 기독교였다. 당시 한국 기독교는 그 역사가 3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3.1 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민족대표 33인 중 16인과 비서명자 48인중 24인이 기독교인이었다. 이 운동의 전국적인 확산도 교회들과 교회가 세운학교들 중심이었다. 당연히 교회가 당한 피해가 컸다. 3.1운동은 한국기독교 역사상의 대표적 민족독립운동이요, 신앙운동이다.

자주독립을 위해 외쳤던 선열들의 절규의 외침을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도 듣기를 기대한다.

근대 우리 역사 가운데 삼일운동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삼일운동은 교회가 전국화, 대중화, 기록화, 세계화하는 일에도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쓰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시작을 가깝게는 삼일운동에 두고 있다.

3.1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 朝鮮(아 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오늘의 대한민국은 나라의 독립과 자유민이기를 위하여 흘렸던 선열들의 고귀한 피와 희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민주적이고, 개인 인격존중 사상을 갖고 있으며 아울러 개인의 자유사상과 하나님 앞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갖고 있기에 민주국가를 표방하는 새 나라의 정신으로 알맞다

기독신앙의 관점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독립과 자유는 사뭇 다르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의 독립과 자유는 무엇으로부터 놓이는 것으로 이는 식민(植民)으로부터 독립이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나 포로생활로부터의 해방 등으로 수동적 움직임으로부터 적극적 활동으로의 전환과 다른 사람 혹은 국가 등으로부터의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의 놓이는 것으로 이는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자유이다.

이사야 51:9절 말씀이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사 51:10)

이 모든 표현이 독립과 자유를 열망하는 표현들이다.

이 말씀은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가 되었을 때, 과거 출애굽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다시 한 번 바벨론의 억압으로부터, 포로의 생활에서 자유를 구하는 애절한 소망의 간구이다.

망국의 유대인들은 유대나라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주권회복을 하나님께 요청하고 있다. 당시 패권국 바벨론 왕이나 주변 강대국의 왕에게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구하고 있음이다.

한 나라의 독립과 자유 그리고 주권회복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분리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 기독신앙인들이 나라와 겨레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이유를 알게 한다.

자유에 대한 열망은 억압을 받고 있을 때 가장 절실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중, 후반의 유신시대, 80년대 초반의 제5공화국 시절을 기억한다. 당시 그들에게 저항하다가 일명 닭장차라고 불리는 차에 실려 어디엔가 버려진 일이 수차례를 당했었다. 하물며 나라를 빼앗겨 망국의 한을 품었던 선인(先人)들이 가졌을 그 비애감은 오죽 했겠는가? 자유에 대한 열망은 외부의 억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압제가 더해지면 더 할수록 강하게 나타나는 법이다.

3.1운동은 나라의 독립과 민족자주의 발로(發露)로 일어났다. 정치적이고도 신앙적인 자유와 독립을 위한 운동이다. 신앙의 자유는 결코 시민(市民)으로서의 자유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의 독립과 자유를 누리고 지킬 줄 아는 것이다.

그 자유와 독립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의외로 매우 어려운 일로서 자유로울 때 그 자유를 지킬 줄 아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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