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신(信)이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중국사회에서는 옛날부터 이 ‘신’을 인간관계의 기봉이라고 생각해 왔다. 논어(論語)에서도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가 없다(人而無信, 不知其可), 백성에게 신의가 없으면 나라의 정치가 서지 못한다(民無信不入)”라고 말한 것은 신의가 없으면 인간사회가 유지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공자(孔子)에게는 증자(曾子)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 증자(曾子)의 신의(信義)에 대한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에 다음과 같이 등장하고 있다.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아이가 뒤를 따라 오며 함께 가겠다고 울어댔다. 그러자 그녀는
“집에서 기다려라, 내가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게 요리해 주겠다.”
이렇게 말하며 아이를 달랬다.
그녀가 쇼핑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인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깜짝 놀라서,
“아까 내가 말한 것은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어요” 하고 남편을 만류했다.
그러나 증자는
아이는 당신이 한 말을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고 있어요, 아이들이란 세상일을 모르는 거야, 부모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이 아이들이야, 당신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이에게 거짓말을 일부러 가르친 것이나 다름이 없어, 어머니가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여 아이가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게 하는 것은 큰 잘못이야, 그러고서는 앞으로 무엇을 가르쳐도 소용이 없게 되고 마는 것이야”
이렇게 말하고 증자는 돼지를 잡아 아이에게 먹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증자(曾子)는 논어에서도 신의(信義)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날마다 세 번 반성한다. 남을 위해서 성심껏 의견을 짜내 주었는가, 친구와의 사이에 믿음이 있었는가? 내가 배워서 잘 익히지도 않은 것을 남에게 가르치지 않는가(吾日三省吾身, 爲人謀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傳不習乎)”
한때 미국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전 세계가 중병을 앓았던 시기가 있다. 그 원인은 월가의 부정직(不正直)에서 비롯됐었던 것이다. 곧 신의(信義)가 없이 거짓이 난무 했던 월가? 어느 한쪽은 속이고 어느 한쪽은 속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이는 쪽이나 속는 쪽 역시 사사로운 욕망을 위한 거짓뿐이지 않았을까?
작금의 우리를 돌아보자 정치, 경제, 교육, 종교 등,, 그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그 거짓에 무감각해 져 있지는 않을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신(信)이란 삶의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마음 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나, 특히 교회의 중요 위치에 있다 할수록 요청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단연 신뢰(信賴)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이들에게 신뢰(信賴) 한다고 하면서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