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1882년 발행된 <예수성교누가복음전서>에 선뜻 알기 힘든 ‘넘ᄂᆞᆫ절’이 나온다(눅 2:41; 22:1,7). 성경과 기독교 용어에 익숙하지 않던 당시 번역자들의 고심이 묻어난 표현이다. 요즘 유월절(逾越節)로 통용되는 한글식 용어다. 최초 한글 번역은 ‘넘어가다,’ 또는 ‘건너뛰다’의 히브리어 페사흐(חספ)의 사전적인 뜻을 가능한 살려 ‘넘ᄂᆞᆫ절’로 번역한 것이다. 이 절기는 고대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체험한 구원 사건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나님이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양의 피를 보고 ‘건너뛰어’ 이스라엘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11절).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표현 ‘넘ᄂᆞᆫ절’은 가장 먼저 번역된 영예를 잇지 못한 채 사라지고 지금은 유월절, 또는 과월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페사흐’는 구약 전체에 약 50 차례, 출애굽기 12장에 세 차례 언급된다(출 12:11,27,43; 레 23:5; 민 28:16; 33:3 등). 사르나는 유대교의 여러 문헌들을 통하여 페사흐의 사전적인 의미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Sarna, Exploring Exodus, 87> 첫째는 가장 오래되고 가능성이 높은 의미로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를 든다.<Targum Jonathan 12:11, 13; Targum Onkelos 13,23,27 절>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낱말이다. 둘째는 ‘보호하다’이며 <70인역>에 의하면 13절의 파사흐를 ‘보호하다’(σκεπάζω)로, 이사야 31장 5절에서는 ‘지키다’(περιποιέω)로 번역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구원하다,’ ‘살려주다’는 신학적 의미가 생성되었다(출 12:27; 사 31:5). 셋째는 가장 빈번하고 광범위하게 번역되는 ‘건너뛰다, 지나치다’이다(출 12:11,48; 레 23:3; 민 9:10,14; 28:16; 신 16:1,2; 왕하 23:21,23; 대하 30:1,5; 35:1). 곧 ‘접촉하지 않고 지나다,’ 또는 ‘아끼려고 건너뛰다’ 등으로 해석되며 유월절의 어원에 자주 인용되는 설명이다. 한편 ‘절뚝거리다,’ 혹은 ‘불구가 되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으나 우리의 논의와는 거리가 있다(왕상 18:21, 26; 삼하 4:4; 5:6).

위에서 살핀 페사흐의 세 가지 뜻에서 현재는 주로 마지막 의미에 강조점이 실려 활용되고 있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라틴어 성경 ‘파스칼’(paschal)의 영향력이 크다. 중세 교회에서 라틴어 성경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파스칼이 ‘부활절,’ 또는 ‘유월절 어린양’을 가리키는 전문 술어처럼 쓰이면서 페사흐가 ‘건너뛰다’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집트의 처음 난 것과 모든 신을 치실 때 문틀의 피를 보고 그냥 ‘지나간’ 이유는 분명하다. 곧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연민과 보호가 가장 우선시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월절에는 이집트의 압제로 인한 이스라엘의 종살이와 부르짖음을 보고 불쌍히 여기시는(출 3:7-8)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하심이 전제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은 해마다 한 해의 첫 달 니산 월 14일(출 12:2)을 최대의 명절 페사흐로 지킨다. 보통 유월절이나 과월절로 불리는 이 축제는 봄의 시작과 이스라엘의 구원 경험이라는 양면이 있다. 곧 겨우내 온통 죽은 것처럼 보이던 대지에 생명의 싹이 피어나는 시점과 이집트의 압제와 종살이로부터 구원과 탈출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절묘하게 묶어낸 것이다. 이것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compassion)과 보호(protection)를 해마다 반복되는 자연의 주기에 맞물리게 함으로써 봄의 새싹을 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확인하는 놀라운 신학적 산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은 해마다 반복되는 봄의 서막이면서 동시에 또한 기적처럼 다가오는 하나님의 구원을 다시 맛보고 함께 나누는 축제의 시간이다. 이른 바 ‘넘ᄂᆞᆫ절’은 출애굽의 핵심 주제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과거 이집트에서 벌어졌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해마다 경험하고 현실에서 구현되는 사실이며 절기이다.

유대교의 ‘넘ᄂᆞᆫ절’에 재미난 일화가 전해온다. 그들은 안식일에 촛불을 켜거나 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헌데 한 쪽에 켜둔 촛불을 발견하고 아버지가 난감해한다. 그 때 어린 자녀를 촛불 가까이 세우고 ‘애, 유월절이 히브리어로 뭐지?’ 하고 묻는다. 그러면 아이는 ‘페(פ), 사(ס), 흐(ח)’라며 입술에 바람을 잔뜩 넣어 소리를 낸다. 그러면 안식일을 범하지 않으면서 촛불을 끌 수 있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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