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들어

윤달이 있어 늦은 한가위
여유 있게 더 뒹군 탓일까
과일이 예년보다 씨알이 굵다

아들아 밥 무라
어머니 목소리 모락모락 들리는
겨울 남향 골목길
아이들은
감기도 안 걸리고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조금만 더 따스하면
더 조금만 느긋하면
이루어지는 소망

혼자가 아니라서
더 포근한 철들기

 - 『문학선』 2018 겨울호에서
*조승래 : 2010년 『시와 시학』 등단. 시집 『몽골 조랑말』 『내 생의 워낭소리』
         『다시 타지 않는 점』 『하오의 숲』 『창다오 잔교 위』 등

▲ 정 재 영 장로
형식상에서 보면, 첫 연에서 과일을 둘 째 연의 사람과 연결하여 비유시켜 놓고 있다. 결론은 3연에 있다. 마지막 연은 모든 연의 종결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연에서 윤달이 있어 추석이 한 달 정도 늦어졌다는 말은 가을에 익는 시기를 충분히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사람도 충분히 기다려야 익어가서 철이 든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2연은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데 충분한 시절을 잘 성장한 아이들이 튼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일이 햇빛의 밥을 먹고 자라듯 부모의 애정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3연에서 조금만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반복하는 언어는 특별히 중요할 때 사용한다. 따스하고 느긋한 햇볕과 그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성숙을 말하는 철들기도 혼자는 불가하다는 것을 말한다. 즉 철들기 까지 성장하는 데는 남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자연의 신적인 의미의 태양과 인간의 부모의 사랑을 등가성의 동일선상에 놓고 논리를 전개하여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3연에서 겨울철을 배경으로 하는 것도 차가운 계절을 위해서 다스함의 영양소가 깃들어야 한다는 것을 전경화 시킴으로 인생의 겨울철도 마찬가지의 속성이어서 성장의 배려가 있어야 함을 동시적으로 보여준다.

‘철이 들어’라는 제목을 중심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단순한 관념이 아닌, 과일이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감각적으로 설득하고 있는데, 이런 면이 시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능력이 된다. 이것은 시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시간은 단순히 시계의 시간이 아닌 우주의 시간, 신적인 시간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시가 산문과 다른 면은 설명이 아닌 보여줌이다. 보여줌을 드러냄 또는 표현이라 한다. 그 말은 언어로 감각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다. 즉 시는 언어로 만든 그림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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