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하나님을 믿으며, 같은 성경책과 찬송가를 부르는 한국교회.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한국교회가 분열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 2019부활절예배는 갈기갈기 찢어져 드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연동교회, 한국기독교총연합은 사랑하는교회, 한국교회연합은 군포제일교회, 한국교회총연합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각각의 색깔에 따라 부활절예배를 드렸다. 과거 30만명이 여의도광장에 모여 연합예배를 드릴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1년에 한번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드린 부활절연합예배 마저도, 갈기갈기 찢겨 연합회별로 각자 드렸다는데 서글프다. 성경도, 찬송가도 분열된 마당에 부활절예배를 연합으로 드린다는 것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른다. 한국교회의 이 같은 분열은 선교 초기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국교회는 영미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드려 교파주의가 뿌리를 내렸다. 분열된 한국교회의 참담한 모습이다. 일제하에서 교단의 분열을 넘어 장로교에 의해 찬송가도, 공과도 분열된 역사가 있다.

한국교회는 1976년도까지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1975년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창립되면서, 첫 사업으로 부활연합예배를 통합하기로 각 교단 지도자들이 합의, 1977년부터 여의도광장에서 연합예배로 드려 왔다. 당시 보수가 대회장을 맡으면, 설교는 진보에서 맡았다. 교인들은 여의도광장이 멀다하지를 않고, 이른 새벽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정부도, 서울시도 부활절연합예배 만큼은 적극 지원했다.

서울시 시내버스는 이른 새벽 여의도로 향했다. 준비위원과 기자들은 여의도에 숙소를 정해 놓고, 취재경쟁도 벌였다. 누가 보아도 부활절연합예배는 한국교회의 하나 된 모습이었다. 아름다웠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했다. 이웃의 아픔과 슬픔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 부활절연합예배가 2010년도를 마지막으로 다시 분열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도 목회자들의 이권이 철저하게 개입됐다.

요즘 부활절예배를 연합회별로 드리는 이유이다.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 만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 승리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의 사명을 완성하셨다. 이 땅에 교회들은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서 특별히 고난당하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상처를 보듬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가난과 질병, 장애와 차별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현장이 한국교회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사역지이다. 그런데 오늘 목회자와 정치인들은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다.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의원은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쳐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고 막말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정진석 의원도 “세월호 그만 좀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고 적은 뒤, “오늘 아침에 받은 메시지”라고 했다. 5년 전 기독교계 조모 목사의 막말은 생명의 존엄성을 망각한 교회지도자들의 의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당시 H연합기관의 공동부회장이었던 조모 목사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면서 “천안함 사건으로 국군 장병들이 숨졌을 때는 온 국민이 조용한 마음으로 애도하면서 지나갔는데, 왜 이번에는 이렇게 시끄러운지 이해를 못하겠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백정이다”고 말해 국민들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차 전의원과 정 의원, 그리고 조모 목사의 막말은 하나님의 생명윤리에서 이탈했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정치인과 목사의 행동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정치지도자와 목회자의 모습이라는데 서글프다. 성서는 이웃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한 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임을 교육하고 있다. 세상은 고귀한 인간의 생명조차 함부로 죽이고 제거하는데 환호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정신 못 차리고 쓸데없는 연합예배 경쟁에 목을 매는 동안, 죽임당한 이웃들의 아픔과 슬픔은 더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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