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하비 콕스(Harvey Gallagher Cox Jr.)는 하버드대학의 신학대학 교수로서 기독교인이다. 그는 유대인 여성과 결혼하여 자녀들에게 유대 전통을 따르도록 양육하였다. 그가 유대교의 회당 예배에서 경험한 유대 풍습의 흥미로운 점을 소개한 바 있다. 즉 유월절 만찬에서 엘리야의 잔을 반드시 준비한다는 것이다.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는 정결식사(ritual meal)에서 예언자 엘리야를 기다리는 상징적인 의식이다. 이 때 대문을 열어두고 의자 위에 엘리야를 위한 포도주 잔을 올려놓는다. 이번 해 유월절에 엘리야가 구원의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와 소망이 담겨있다. 유월절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봄에 엘리야를 기다리는 신앙은 미래에 대한 낙관적 희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봄을 여는 만찬 자리에 엘리야를 초대하는 풍습이 어느 순간 자리를 잡았고 해마다 그를 위한 잔을 정성껏 마련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엘리야는 예언자의 대표성을 가지면서도 신비로운 캐릭터다. 첫째로, 열왕기에 보면 야웨는 살아있는 엘리야를 회오리 바람에 실어 하늘로 데려간다(왕하 2:1). 이렇듯 불가사의하게 사라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엘리야는 곧 하늘과 땅에 속하는 두 왕국의 시민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에서 그가 양쪽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는 민간전승이 싹트기 시작하였고 나아가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확장된 것이다. 둘째로,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 말라기의 최후 예언은 엘리야의 파송으로 마무리 짓는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말라기는 엘리야를 보냄으로써 ‘크고 두려운 날’을 준비케 한 것이다. 이것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으로 메시아의 도래를 위한 사자를 앞서 보낸다는 말씀이다(마 11:10).

한편 세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변화산 사건’에는 모세, 엘리야, 그리고 예수가 동시에 나온다(마 17:1-13; 막 9:2-8; 눅 9:28-36). 복음서 기자의 세 사람에 대한 환상은 그의 작가적 상상력이 아니다. 이와 같은 삼인구도(triad)는 유대교의 역사 전개를 설명할 수 있는 신학적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예컨대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 예언을 상징하는 엘리야, 그리고 율법과 예언을 성취한 메시아라는 세 단계의 역사를 상정한 것이다. 따라서 말라기가 엘리야의 파송으로 예언과 구약을 최종적으로 종결짓는 것은 메시야가 곧 오리라는 확신에 근거한 예언이며 역사관이다. 실제로 복음서에는 예수가 메시아인지 그보다 앞에 오실 엘리야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광경이 꽤 여러 차례 언급된다. 예컨대 세례 요한의 제자들(눅 7:20), 군중들(마 11:14; 막 8:28), 처형장의 사람들(막 15:35) 등을 보라. 이렇듯 엘리야가 메시아를 위해 먼저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는 믿음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유대 전통이었다(막 9:13). 그렇기에 복음서는 세례 요한을 예수를 위해 먼저 태어나고 그의 길을 닦는 선구자이며 예언을 마감하는 엘리야와 같은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막 1:2-8; 눅 1:16-17).

해마다 유월절은 기독교의 부활절과 맞닿는다. 기독교는 메시야가 이미 왔다고 믿는 반면 유대교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유대인들은 이 번 유월절에도 ‘엘리야의 잔’을 준비하며 엘리야와 메시아의 도래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올 해 유월절 만찬이 끝나고도 엘리야의 잔이 그대로 있다면 메시아는 올해도 오지 않는다. 이점에서 구약의 말라기와 신약의 마태복음 사이에는 엄청난 신학적 비밀이 담겨있다. 말라기 4장에는 모세가 나오고(4절) 뒤이어 엘리야를 파송하는 구절이 소개된다(5절). 그러나 세 번째 인물은 놀랍게도 시간과 공간을 훨씬 뛰어넘어 마태복음 1장 1절에 등장한다. 이로써 변화산의 모세, 엘리야, 예수가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율법과 예언이 완성되고 성취되는 메시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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