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성 길 목사

진아가 대학다니던 시절에 언니와 자취생활을 했다. 어느 날 언니가 회사동료에게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다. 이제 겨우 젖을 뗀 몰티즈였다. 강아지는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비실비실했다. 우유를 줘도 맛있게 먹는 법이 없었고, 콧물도 자주 흘렸다. 여느 강아지들이 해보일 법한 애교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더욱 정성을 다해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강아지가 축 늘어져 있었다. 자매는 강아지를 품에 안고 동물병원 응급실로 뛰어 갔다.

강아지는 이런저런 검사를 위해 응급실에 눕혀졌고, 자매는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20분쯤 지났을까......수의사가 응급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고, 자매는 직감적으로 강아지가 위중함을 느꼈다. 자매가 응급실로 안으로 들어서자, 미세한 숨을 이어가던 강아지의 얼굴이 한쪽으로 툭 떨어졌다. 그 순간 수의사가 슬픈 어조로 '사망 선고'를 내렸다.

"운명하셨습니다......"

그 말에 자매는 소리 내서 엉엉 울고 말았다. 자매가 우는 동안 수의사도 곁에서 같이 슬퍼해주었다. 양지바른 곳에 강아지를 잘 묻어주고 산을 내려오다가 진아가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아까 수의사가 '운명하셨습니다'라고 한 거 맞지?"

"응......"

"강아지한테도 운명했다고 말하나?"

"아니......"

"그런데 아까 그 수의사는 왜 강아지한테 '운명하셨습니다'라고 했을까?"

"수의사가 그렇게 말해줘서 우리가 눈치 안 보고 실컷 울었잖아."

"응...... 맞아......"

작은 강아지의 죽음에 다 큰 어른 둘이 엉엉 우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수의사가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자매는 막 죽음을 맟은 이 작은 존재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증한 존재였는지 이해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충분히 슬퍼할 수 있었다.

진아는 지금도 동물병원 앞을 지날 때면 그 수의사 생각이 난다.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 생명을 기르는 사람들 마음을 헤아리고 그 사랑을 이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이 진아는 참 좋다. 그러면서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에서 생명을 사랑하는 사회를 생각해 본다. 이 수의사야 말로 생명을 사랑하는  진정한 참 의사였다.

다시 새겨 본다.

"강아지가 운명하셨습니다"

/새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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