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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목사] 예수님을 삶의 기준으로 삼자
김명환 목사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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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8  0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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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명 환 목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의 기준을 누구의 기준에 맞춰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분명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계 동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판단에 몰입된 나머지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삶의 기준으로 삼은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야만 성공한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못살면 실패한 사람으로 스스로 자학한다. 물질의 가치를 삶의 기준으로 삼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분명하게 말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않으면, 실패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 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죽은 사람이며, 영혼이다. 또 죽은 믿음이다. 분명 세례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다. 거듭나기로 예수님과 약속한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지를 못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한마디로 윤리와 신앙을 떼어서 생각한다. 윤리는 강조하는데 신앙은 찾아 볼 수 없다. 신앙은 강조하는데 윤리의식은 전혀 없다.

윤리와 신앙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없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윤리적으로 타락한 사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하다. 윤리적으로 모자란 것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신앙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양심’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양심은 자명하면서도, 정의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흔히 “양심에 손을 얹고 물어보시오”라고 말한다. 양심의 자명성을 전제한 것이다. 윤리는 양심을 동반하고, 그것을 이반할 때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앙도, 윤리도 바꾸어 왔다.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오염된 교회의 예배는 춤을 추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성경구절 만을 가지고 위로를 받는다. 이런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정상적이라면, 보편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이러한 신앙생활은 당장은 만족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허하다.
그렇다보니 교회의 예배는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염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보면, 이중적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도바울도 “내 내면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들여다가 보면, 자신도 이중적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는 삶과 영혼은 죽은 것과 다른지 않다. 탐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비위나 맞추려고 하는 신앙은 위장된 신앙이며 우상숭배이다.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는 것은 탐심이다. 우상이다. 자신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떠돌아 다니는 것은 죄이다. 교인들 중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건축 헌금 등을 약속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은 환상이다. 헌금도, 행복도, 적절해야 한다. 정보시대 우리의 삶, 오늘의 삶은 넘어져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권력을 따르며, 권력에 중독되어 치유 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권력을 잡았던 모든 사람들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적대적인 관계만 형성한다. 오늘 공산주의도 끌어안는데, 반대세력을 끌어안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민족은 날아 남기 위해 일제와 6.25한국전쟁 아래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은 일제와 6.25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너무나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보니 정치인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세태가 되어 버렸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국민들은 믿고 따른다.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민족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 3.1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여운형 선생과 김규식 선생이 3.1운동을 반대했다고, 대신 임시정부 의정부에서 탄핵당한 이승만이 3.1운동의 중심에 있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해도, 교인들은 이를 믿고 따른다. 한마디로 안타깝다. 그렇다 오늘 세계는 뿌리는자는 없고, 거두는 자만 있다. 거두는 자, 금융자본만이 대접을 받는다. 뿌리는 노동자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경제학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대접을 받는 것이다. 믿바닥의 삶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밑바닥의 삶을 모른다. 오늘 세상은 돈에, 자본에 노예가 되어 미쳐 있다. 그것은 교회도 다르지 않다. 십자가는 지지 않고, 십자가 탑을 높이는데만 급급하고 있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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