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문 현 미 시인

봄의 포구는 약동하는 기운으로 가득찬다. 바다에서 갓 잡혀서 올라온 꽃게, 간재미, 도다리, 참숭어 등등. 푸른 파도를 머금은 해산물들이 풍성하다. 가게의 수족관마다 바다의 싱싱한 소리로 출렁이고 있다. 봄에는 알이 꽉 찬 햇꽃게를 찾아 포구로 향하는 걸음들이 분주하다. 꽃게철이니 모두 깊은 맛의 향기를 잊지 못하는 것이리라. 쏟아지는 햇살과 차오르는 온도로 인해 나른해지면 주말에 한 번 포구를 찾아가 보시라.

이 시는 간장게장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통찰과 예민한 감각이 잘 형상화 되어 있다. 꽃게를 바라보는 시인의 특별한 눈을 통해 어미와 자식의 관계를 밀도있게 담아낸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 안으려고/꿈틀거리다가 더 낮게/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아직 생명으로 온전히 태어나기 전인 알을 지키려는 어미 꽃게의 눈물겨운 모습이다. 새끼를 보호하려는 간절한 모성을 미시적 관점으로 밀착해서 생생한 현실감을 드러낸다. 이어서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의 시행에 이르면 절박감이 극도에 다다른다. 버둥거리다는 단어가 과거·현재 시제로 반복됨으로써 죽음을 막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음을 감지한 어미 꽃게는 곧 죽게 될 알들에게 마음을 추스르고 토닥이듯 말을 한다. “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 평온하게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어미의 뜨거운 사랑이 들어 있다. 시의 전반에 흐르는 압도적 긴장미가 후반의 이완된 두 행에 의해 반전이 일어난다. 가슴 저리게 슬프면서도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작품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저 깊은 곳에서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한 편의 좋은 시가 가만가만 스며들어 자꾸 심금을 울린다. 가족 간의 사랑과 따뜻한 소통을 묵상해 보는 눈부신 5월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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