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짜증 섞인 투정에도/어김없이 차려지는/당연하게 생각되는/그런 상/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엄마 상/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엄마 얼굴”

3년전 부안여자중학교 이슬 양의 ‘하늘로 간 엄마 향한 詩’는 동요로 만들어져 8일 어버니날 저녁시간 텔레비전에서 불려졌다. 우리가족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 동요였다. 이슬 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의 도움을 가장 많아 받아야 할 나이에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이양의 엄마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5년 동안 투명하다가 37세 젊은 나이에 가족들과 이별했다. 엄마는 가족들과 이별하기 전 2년 동안 중환자실에서 있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아버지 이성씨는 이슬양과 오빠 이서인군의 밥상을 차렸다. 이성씨는 건설현장서 일하며, 남매의 보육과 부인의 병간호를 해야만 했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하루하루의 삶이 버거웠다. 그런데도 남매는 투정 한 번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 이성씨는 “남매가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 놓는다. 이양은 초등학교때 동시 ‘가장 받고 싶은 상’을 썼다. 이 시는 지난 2016년 11월 전북교육청이 주최한 '너도나도 공모전'에서 동시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올 초 이 동시를 읽은 여수 여도초등학교 조승필 선생이 곡을 붙여 "마음 아프고 감동적" 노래로 만들었다. 이양의 시가 수상 3년 만에 동요로 제작된 것이다

이 동요가 어버이날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 안방에서 불려졌다. 이양은 도화지에 연필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시를 썼다. 어머니가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을 곁에 두고 웃는 모습도 그려 넣었다. 이양이 쓴 시는 243편이 출품된 작품 중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이양은 "엄마가 차려주셨던 밥상이 그립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것은 엄마의 얼굴"이라고 소감을 남겼다.

이 동요가 안방에서 불려질 때 눈시울을 적시지 않은 국민은 없다. 조 선생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서 우연히 이슬양의 동시를 보고, 곡을 붙였다. 조 선생 역시 “이 동시를 보는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고 털어 놓는다. 초등학교 6학년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때, 엄마의 사람이 듬뿍 담긴 ‘엄마의 밥상’(얼굴)을 그리워하며, 한자 한자 써 내려간 ‘가장 받고 싶은 상’, 엄마의 밥상이 아니었을까.

짜증 섞인 투정에도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차려지는 밥상, 이 밥상이야 말로 없어서 안 될 ‘사랑의 밥상’, ‘생명의 밥상’, ’평화의 밥상‘, '화목의 밥상’이 아니던가. 이양은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간 이후, 얼마나 그리워 한 상인가를 생각하며, 노래를 듣다보니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버이날 저녁 이 노래를 들으며, 엄마의 밥상에 대해서 소중함과 고마움을 왜 느끼지 못했는지를 생각하니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에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친다.

이제 다시는 세상에 받지 못할 엄마의 밥상은 우리의 곁을 떠난 엄마의 얼굴이 아닌가. 이 상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상이 아니었던가. 그것도 하루에 3번씩 그 시간에 어김없이 나왔다. 이 밥상에 대해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 할 줄을 몰랐다. 이 밥상이 있었기에 우리는 생명을 이어 왔다. 우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장성 할 때까지 엄마의 밥을 먹으며 생명을 이어 왔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명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각종 세상의 상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기뻐하며, 드러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상인 ‘엄마의 밥상’에 대해서는 감사 할 줄도, 기뻐 할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이슬양의 동시를 통해 깨닫는다. 엄마의 밥상이야 말로 당연한 상이 아니라, 이양의 동시처럼 가장 위대한 ‘생명의 상’인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큰 상이 아닌가. 8일 저녁 이슬양의 동요를 들으며, 다시는 받을 수 없는 엄마의 밥상을 그리워 해 본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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