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위 두 구절은 출애굽의 신학적 중요성을 정교하고 효과적인 수사법으로 묘사한다. 즉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앞과 뒤에 양괄식으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완료형 동사 넷을 연달아 언급하여 출애굽의 의미를 점층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뼈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야웨라 … 내가 너희를 빼내며 건지며 구원하여 (백성으로) 삼는다 …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내가 너희의 하나님 야웨인줄 알게 되리라.”

우선 굵은 글씨로 인용된 네 동사는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통하여 경험하게 된 네 차원의 변화를 암시한다. 문법적으로 네 동사 모두 ‘연속 서술’ 용법으로 쓰였기 때문에 히브리어 본문의 시제처럼 완료형이 아니라 미완료로 해석해야 한다. 아직 출애굽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에서도 미완료가 맞다. 인용된 동사의 주어는 모두 ‘야웨’ 일인칭 시점이다. 조상들에게 밝히지 않은 이름 ‘야웨’를 스스로 밝힌(2절) 그 분이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먼저 ‘너희를 빼내며’의 동사 원형은 ‘야차’(אצי)다. ‘나가다’의 사역형으로 출애굽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동사다. 이집트 제국의 무거운 짐 밑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시겠다는 단호한 의지 표명이다. 첫 번째 동사는 출애굽의 공간적 의미를 밝힌 셈이다. 곧 압제와 노역과 고통으로 점철되는 거대한 제국 이집트라는 장소로부터 탈출이다.

두 번째 동사 ‘건지며’는 ‘나찰’(לצנ)이 원형이다. 본래 뉘앙스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경우다. 사전적 의미는 ‘구하다, 회복하다’의 사역형 히필로 마치 남의 물건을 빼앗듯 ‘낚아채다,’ 죄와 고통과 사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다’를 가리킨다. 동사 ‘나찰’은 출애굽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얻게 될 신분상의 변화를 나타낸다. 흔히 출애굽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으로부터 탈출이라는 생각에 머물기 쉽지만 여기에 공간적, 신분적 두 차원의 변화가 함축된 것을 읽어야 한다. 신분의 변화는 나중에 ‘백성으로 삼는다’에서 완성된다.

세 번째 동사는 ‘속량하여’이다. ‘구속하다’<개역한글>, ‘구하다’<공동번역, 새번역>로 옮겨진 가알(לאג)의 영어 번역은 redeem이다. 가알은 대가를 지불하고 명예나 권리나 지위 등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법적 용어다. 야웨는 ‘편 팔과 큰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살려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가알 동사는 구원사적 의미를 대표한다. 이스라엘은 공간적(야차), 신분적(나찰), 영적(가알) 변화를 통하여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네 번째 동사는 ‘삼다’이다. 히브리어 ‘라카흐’(חקל)는 ‘받아들이다, 결혼하다’는 뜻이다. 마치 입양하듯 합법적인 절차를 통하기보다는 직접 선택하고 자신의 손으로 데려와서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것이다(왕하 4:1). 얼핏 보면 불법적인 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는 대목이지만 하나님의 적극적 구원 행동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동적이며 강권적인 개입은 이미 앞의 세 동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빼내고 건지며 속량하는’ 연속적 행위는 결국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으로 삼으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은 ‘야웨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위 본문에 쓰인 네 동사는 출애굽의 네 단계 곧 4중적인 의미를 통하여 야웨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야웨라.’ 해마다 유월절 만찬은 바로 전날 밤에 성대하게 벌어진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떠올리며 네 차원의 구원 경험을 재현한다. 곧 네 동사의 의미를 되새기며 만찬 중에 넉 잔의 포도주를 마신다.<Sarna, 32> 처음 세 잔은 물에 희석하여 식사 도중에 들이키고 나머지 한 잔은 만찬이 끝난 후 함께 마신다. 경우에 따라서 다섯 번째 잔을 준비하여 엘리야의 의자에 놓는 예도 있다.

‘빼내며 건지며 구원하여 삼는다’에 연속된 네 동사는 출애굽의 네 단계의 의미를 보여준다. 곧 공간적, 신분적, 영적인 세 차원의 변화를 통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은총을 해마다 유월절에 현재화 한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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