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사회, 특히 한국교회는 근본주의와 원리주의에 빠져 있다. 따라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내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렇다 보니 우리사회와 교회는 적대적 관계로 만들어져, 불신과 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늘 정치인과 보수적 교회지도자들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국민들과 교인들을 볼모로 편 가르기를 하며, 나라와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목소리이다.

최근 한국교계는 기독교정치세력화가 화두로 오르면서, 이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정치세력화의 목적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서구의 기독교정당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창당되었다. 즉 하나님의 통치를 소망한 것이다. 홉즈는 종교개혁 이후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이 계속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종교에 개입해,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국가종교’를 주창했다.

홉즈의 국가종교나,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는 ‘길과 진리와 생명’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좌파정권 척결, 독재자 옹호 등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말하는 정치세력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홉즈의 ‘국가종교’나, 존 로크의 ‘정교분리’는 모두 종교적 자유,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간구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말하는 교회지도자, 일부 기독교인 정치지도자는 교회와 하나님을 앞세워 국민들을 ‘좌’와 ‘우’로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다는데 서글프다. ‘우’에 서면 애국자고, ‘좌’에 서면 무조건 빨갱이로 만든다. 심지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하여 국민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인 살인마,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을 학살한 독재자를 옹호하며, 불법을 자행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 한국교회 지도자와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에서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그의 나라를 기대할 수 없다.

교회지도자와 정치지도자들이 변한 세상을 직시하고,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먼저 생각한다면,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는 쉽게 올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지금의 모습대로 이웃의 아픔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잘못된 역사와 불법을 옹호하며, 독재자들을 계속해서 찬양하는 한 하나님의 통치(기독교정치세력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은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뼈아픈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를 대망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 그것은 나를 하나님께 위탁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막혔던 담을 무너트릴 수 있다. 악마와 대적해서 승리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도 하나요, 교회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확증이 없다.

그렇다 보니 기복신앙에 길들여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증하지 못하고, 기도 할 때 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것은 우상숭배와 다르지 않다. 분명한 것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실천하는 자만이 주님과 동행한다는 사실이다. 근본주의 신앙과 원리주의에 갇힌 사람들은 선과 악 2분법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길과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지 못한다. 우리는 무조건 북한동포들을 적대시 한다. 우리가 북한을 적대시 하면, 북한도 우리를 적대시 한다.

적대적의 관계는 결국 전쟁밖에 없다. 선으로 대하면, 선으로 돌아온다. 특히 우리는 남한의 하나님이, 북한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남한 민족만이 가는 곳이 아니다. 남북한민족이 함께 가야 하는 곳이다. 오늘 보수적인 교회 지도자와 기독교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원리주의와 근본주의 신앙에 갇혀 있는 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 할 수 없다. 길과 진리와 생명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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