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자 목사
 “모든 것을 실현시키고, 달성하기 위한 열쇠는 목표설정이다. 나에게 어떻게 해서 성공했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성공 목표는 75%가 목표성정에 있었다”

 이 말은 미국 텍사스의 30대 억만장자 폴 마니어라는 사람이, 인간에게 있어 성공하려면, 목표설정의 분명함과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은 두 얼굴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나는 현재의 얼굴이고, 또 하나는 미래의 얼굴이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실패의 쓴맛을 본다. 단순한 꿈과 목표는 다르다. 꿈은 정적인 반면, 목표는 동적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누구에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두 아버지가 있다. 하나는 육적인 아버지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나를 낳아 주셨다. 몸을 길러주시고, 교육을 시켜주셨다. 또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방향을 잡아 준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영의 아버지는 내 영이 어떻게 살아야 바로 사는가를 일깨워 주신다.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기도의 목표는 육의 아버지에게로 향해 있지 않다. 영의 아버지 하나님께로 향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마 6:9, 눅 11:2)

 땅 위에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름으로 기도를 시작하라고 했다. 기도는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신의 소원을 아뢰며, 오늘을 있게 한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자기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그런 자녀는 숨겨놓은 자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과거 우리사회도 서자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 얼마나 슬프고 불행한 일인가? 이것은 홍길동에 나타난 길동이가 아버지인 홍참판에게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사연에서 잘 알 수 있다.

 “자식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슬픔이 크기에 집을 나가 신분의 차이가 없는 자유로운 세계에서 살고 십사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도 불행이다. 왜 성도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가? 벙어리여서 인가? 아니면 부를 줄 몰라서인가? 그것은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며, 아버지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자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도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속에서 부활시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간구의 기도를 통해 관계를 끈끈하게 맺어가야 한다./햇빛중앙교회·충주금식기도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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