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대통령의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해방 후 귀국하였으나, 독립군들을 괴롭혔던 친일 경찰에게 또다시 모욕, 고문 등을 당한 아픔의 역사 등에까지 눈을 감아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뿐인가 다수의 독립운동가들 역시 친일 세력들에게 짓밟혔을 때 그 비통함이 얼마나 컷을까?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엔 대통령의 그러한 아픔의 역사로부터 벗어나 국민적 화합을 말한 대통령 추념사를 놓고 또다시 색깔론으로 덧씌우는 이들의 목소라는 높아만 간다.

따라서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의 국정교과서 등에서 ‘김원봉’의 독립군 활동을 높이 평가 했다는 등의 보도는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언제나 그러했듯이 정치인들의 이러한 정치적 이해득실에 의한 목소리로 인하여 국민들의 애국애족(愛國愛族) 관에 혼선은 갖게하는 우를 범하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매국노(賣國奴), 친일세력(親日勢力) 등이 어느 날엔가 국가유공자(國家有功者)로 변신되어있고, 애국애족(愛國愛族)한 자들이 육이오전쟁으로 인하여 적(敵)이 되어있는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 그럼으로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의 한반도가 되기를 열망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전쟁론을 외치는 자들도 있음에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일까 전쟁에 준하는 도발을 해 달라며, 금전거래까지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을 때엔 ‘그들의 실체는 무엇이지?’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도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연한 듯이 활보하지 않았는가? 도대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야 말로 북한 사회주의 지령을 받는 자들은 아닐까? 물론 그러한 자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이제 우리의 가치관을 혼란에 빠져 들게 하는 언행들은 삼가야 한다. 자기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정당한 것이고 당신들의 말은 빨갱이다 하는 등의 논리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생각해 보자! 육이오 남침을 한 북한은 대대로 용서가 안 되며, 한반도 평화, 교류, 번영, 통일은 영원히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평화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또 다른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을 선동하여 육이오를 발발시킨 러시아, 북한을 지원 전쟁에 개입해 통일의 기회를 막았던 중국 등과도 교류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눈을 떠야 한다.

또한 36여년이 넘게 우리를 짓밟았던 일본과는 우방운운 하지만 일본은 "일본 고유 영토인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명)에 대한 일본 주장을 확실히 전달해 끈기 있게 대응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며, 후세대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는데 일본이 다시 침략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러나 그러한 일본과도 우리는 우방, 교류, 평화 등을 외친다. 그러나 유독 북한과의 교류, 평화, 번영, 통일 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외침의 목적이 무엇일까?

또한 ‘황OO’씨가 대한민국에서 서훈을 할 정도의 영웅일까? 글쎄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도 북한의 권력에 밀려 살기 위해 남으로 도주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그가 북에서 자기 권좌를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었다면 남으로 도망 왔을까? 그 사람이 자유 민주주의를 원해서 왔다고 보기에는 그가 인생의 끝자락이었다는 데서 그의 진정성으로 엿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북한의 정보를 갖고 왔으니 자유민주주의 수호자요 애국자다? 정말 납득하기가 어렵다. 감히 어떻게 약산 ‘김원복’위에 ‘황장엽’을 둘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써 국가와 민족 앞에 어떻게 살아 왔는가? 무슨 짓을 해 왔으며? 어느 때 박수를 보내고, 돌팔매질을 해 왔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돌이켜 생각해보자, 당신의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신다는 사실이 믿어진다면!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마 24:25)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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