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종 문 목사

오늘 한국교회는 민족 분단과 군사적 대립관계를 방치하면서 평화를 기도하고, 노래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공 예배 기도와 골방기도에서 평화통일을 위해서 기도한다며, 허공을 친다. 이런 기도는 헛소리요 거짓말이다. 행동하지 않는 기도이다. 한국교회의 침묵은 비성서적이며, 반 그리스도적이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한국에 있어서 그 곳은 어디인가? 분단의 현장이 아닌가?

민족들과 인종들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사회에서의 빈부의 차별,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한 관계, 종교 간의 분쟁이 계속되는 한 평화는 없다. 이제 세계상황에 휘말려 든 한국교회는 평화를 기도하고 노래할 자유와 하나님의 평화에 참여 할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평화(샬롬)의 의미는 창조자 축복 아래서 자연과 화합하는 삶, 사회에서의 번영을 향유하는 삶을 의미한다.

세계 패권자들이 과학기술과 결탁, 핵무기를 계속해서 생산하면서 창조자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 할 수 없다. 특히 세계의 가난한 민족의 삶을 박탈하는 일을 자행하면서, 평화를 운운하는 것은 죄악이며, 범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역사적, 민족적 상황을 인식하고, 참된 평화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 없는 세계와 분단된 조국의 한복판에서 증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평화의 길로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오랜 식민통치와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불과 70년 만에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했다. 이런 사례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사례에 속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들이 전후에 급속한 발전을 이룬 한국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경제발전과 민주화, 정부 개혁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등 그대로 따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올해는 6.25전쟁이 일어난 지 69주년이 되는 해다. 해마다 6.25전쟁 기념일이 되면 대형 교회 등 여러 기관 단체들이 보은 차원에서 6.25참전 용사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갖는다. 20대의 꽃다운 청년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용사들은 이제는 9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어 지팡이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폐허 속에서 기적을 이룬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 속에는 UN의 결의로 우방인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그 희생의 결과, 오늘의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긍심과 부러움이 함께 묻어있다. 그들은 다시 찾은 이 땅에 와서 한 결 같이 과거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평화의 지대로 바뀌는 DMZ를 보고, 평화를 향한 열정에 애쓰는 남북한 당국자의 모습에 감탄한다. 그러나 한민족이 평화를 향해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특히 힘에 의한 평화, 로마평화(팍스)를 외치며, 경제적 성장만(맘몬)을 외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모습은 안타깝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이 맘몬과 바벨에 길들여져 가진 것을 내려놓지를 못하고,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 보다도 크게 느끼고 있는 때문이다. 그러면서 성직자들은 국민상호간에 불신풍조를 조장하고, 자신의 뜻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양심의 소리를 봉쇄해 왔고, 봉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의 길에서 유리되어 있다.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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