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호국보훈의 달로 부르게 된 이유는 6.25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에게 6.25전쟁은 단지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의 한 페이지 그 이상의 의미와 교훈이 있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어야 했던 비극적 전쟁이 발발한지 69주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전쟁의 상흔은 분단과 이산가족 등 유무형의 상처로 내물림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남과 북은 전쟁의 아픈 기억과 상처를 지우기 위해 애써왔다. 2차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과거의 냉전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사라지나 했다. 그러나 지난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이 드러나면서 대화를 통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구축은 또다시 미로를 헤매고 있는 양상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서 다시는 6.25같은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과거 독재 정권 하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 쳐들어 올까봐 전쟁 위기설과 안보 불안감을 조성하며 정권 유지의 방편으로 활용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반도를 둘러싼 그 어느 나라도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어서 북한이 과거와 같이 무모한 침략을 감행하리라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자신의 체제에 대한 보장과 경제적 대가를 요구하는 등의 행위가 자위 수단이라기보다는 언제든 한반도의 평화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핵무기 폐기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69년 전 6.25전쟁은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북이 남침할 수 있도록 기회와 명분을 준 것은 남한 정부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군의 뿌리가 김원봉이라고 한 발언이 국민 사이에서 엄청난 논란이 있는 것과, 전쟁에 대한 책임론에 있어서도 국민정서와 다른 역사관이 논의되는 것 역시 6.25에 대한 우리 국민의 상흔이 얼마나 깊은가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진 일종의 국지전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국가의 정체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66년이 지났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역학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남한의 경제력이 급성장했지만 정치외교적 구도는 소련의 자리에 대신 중국이 차지했다는 것 말고는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다.

남북 관계도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통한 평화구축을 말하고 있으나 핵보유국 지위를 얻으려는 북이나 대화를 통한 평화 구상에서 번번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남이나 크게 달라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이렇게 되면 한반도의 미래는 힘의 논리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힘의 논리가 강대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화해와 평화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는 점이다. 강대강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 남과 북은 미래를 향해 조금도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성경은 동족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원수로 지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같은 민족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이 오늘 한국교회에 부과된 사명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전쟁의 상처는 그 상대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확대 재생산한다. 그러나 기도는 그 증오를 내려놓을 수 있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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