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필자는 그 후로 한국교회의 신학적인 논의들에 대해서 점검하면서, 한편으로는 고난을 이기고자 했던 선진들에게서 큰 도전을 받았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화되면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1988년, 킹던 박사의 발표 직후에 그 자리에서 일본의 저명한 칼빈학자 와타나베 교수가 신사참배는 국민의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한국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려하였고, 필자는 단호히 논박했다. 토론시간에 불편하고도 심각한 의견충돌이 이어졌다.

킹던 박사가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고난에 대해서 발표한 지, 20여 년이 지난 후에, 종교개혁자들이 남긴 정신이 오늘날 어떻게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오늘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돌이켜 보면서 필자는 킹던 박사의 글을 다시 회상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필자는 다음 부분을 이 논문에 연계하여 생각하도록 준비하게 되었다.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자들과 칼빈이 경험했던 고난과 박해,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대한 확신은 한국교회 속에서 어떻게 인지되었고, 녹아들어와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내려주신 가장 역사적인 축복이자 특별한 은혜는 1907년 평양대부흥 운동과 1909년 새벽기도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18세기에 미국 대각성운동과 같이, 때마다 곳곳에 성령의 충만함과 기름부음을 베풀어 주셔서 교회를 소생시켜주셨다. 필자는 한국에서 벌어진 두 가지 영적인 운동들과 이런 신앙을 계승한 분들이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통해서 우상숭배를 거부한 일련의 사건들이 한국교회의 신앙적 유산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회개 기도운동이 사경회와 부흥회, 성경공부모임과 기도모임을 통해서 갖가지 형태로 발전되어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젖줄이 되었다고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 칼빈주의 개혁신학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형성된 기도운동과 우상숭배 거부, 참회 운동이 중요한 요소들이다. 한국교회가 지닌 신학은 서양 학자들이 제시한 것처럼 이론적으로 정연하게 체계화하지는 못하였지만, 순교신학이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교회가 체득한 신앙유산들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 살았던 한국교회 신앙선진들에게 주셨던 성령의 위로와 체험이었다. 전 세계 그 어느 교회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요, 한국교회가 물려받아야할 선조들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고 확신한다. 이들 중요한 사건들 속에 한국교회가 형성한 신학적 뼈대가 형성되어졌다고 강조하고자 한다.

6. 상한 심령의 위로와 치유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남긴 유산의 핵심은 성도들에게 엄청난 격려와 용기를 주었다. 환란과 인내를 감당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의 역사로 인하여 영원한 소망이 충만하게 부어진다. 하나님은 심령이 찢어진 자들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외면하지 않으신다.

한국에서도 역시 가장 가련하던 시절에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위로와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한국 교회가 체험한 은혜들은 국가 전체적으로 가장 어렵고 힘든 시대에 주어진 것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복음을 처음 받아들이게 된 것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절이었다. 국내외에서 열강들이 양육강식의 침략전쟁을 경쟁적으로 전개하고 있을 때에, 한국 정치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에 이르러서야, 초기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내한할 수 있도록 입국의 통로가 열려지게 된 것이다.

1884년 9월 20일 알렌 선교사의 입국으로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 구한말 조선에 살던 시민들은 “상처입고, 찢어진 가슴”을 가지고 구원의 메시지를 열망하던 사람들이었다. 필자는 초기 한국 선교를 담당했던 여러 선교사들의 글에서 “상한 심령”을 언급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평양대부흥 운동의 현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설교를 했단 당사자, 윌리엄 블레어 선교사는 처음 한국인들을 만나고 난 후에 “찢어진 가슴” (broken heart)을 가지고 살아가던 불쌍한 사람들이었다고 여러 차례 술회한 바 있다.

에모리 대학교 총장 캔들러 (W. C. Candler)가 구한말 기울어가는 조선을 방문한 후에 쓴 글에서도 “찢겨진 심령”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있다.

여러분은 마음이 깨진, 심령으로 애통하는 나라를 본 일이 있습니까? 보지 못하였다면, 한국을 보지 못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심령으로 애통하는 남녀를 본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보기 전까지는 온 겨레가 온통 그 뿌리에서부터 좌절한 모습을 보지는 못하였었습니다. 한국은 이제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안팎에서 완전히 절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기를 두고 추구한 일본의 야망이 성취되고, 한국은 그 마지막 독립의 희망을 잃고 말았습니다.

찢겨진 심령으로 좌절과 절망에서 허덕이던 나라. 희망이란 완전히 사라진 나라에 복음이 울려 퍼졌다. 최초의 서양 선교사 알렌이 1884년 9월 20일 기울어가던 조선 땅에 입국하였다. 구한 말에 들어온 기독교의 복음은 혼돈 속에서 방황하던 한국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주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진 성경적인 신앙은 결코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된 땅에서 신앙의 초석을 놓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경험했었다. 비록 과오와 실수가 많았을지라도, 택한 백성들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다시 성령의 무한한 위로와 충만을 향해서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만 한다. 모세는 광야에서 사십 년의 세월을 흘러 보내면서, 때로는 무료하고 한심스럽게 갈고 닦아야만 했다. 그는 또 사십 년을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그래야만 모세 오경과 같은 놀라운 책이 나오는 것이다. 신앙은 때로 가족도 없이 야곱이나 요셉처럼 고난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에 정금같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저 나온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건과 세월 속에서 되새기고 또 반복하면서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층 한층 다져지는 것이다. 성령의 위로와 말씀의 감화하시는 은혜가 오늘도 성도들의 회개기도에, 특히 새벽기도회에 함께 하고 있다.

제11장 종교개혁의 본질과 현대적 적용

지금 한국에서는 개신교회에 대한 신뢰가 거의 절망적이다.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자 세워진 개혁교회인데, 오히려 성도들이 개신교회를 불신하고 교황의 무리로 되돌아간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한국 기독교의 모든 통계들은 가히 교회가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지역 교회마다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목회환경이 극도로 나빠졌다. 교회뿐만이 아니라, 한국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 법조계, 기업가들, 학교법인 등에서도 상상치 못하였던 범죄들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전반에 대해서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온 지 오래되었다. 무엇보다도 더 심각한 일은, 대형교회와 유명한 목회자들이 드러낸 충격적인 부정 사건들로 인해서 기독교 전반에 대한 사회적 공신력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기독교 연합 기관들의 부패 스캔들로 인해서 한국기독교는 총체적 위기상태에 빠진지 오래 되었고, 거의 침몰하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사회와 기독교 교계 안팎으로 표출된 문제들은 수없이 많은데, 아무런 대안 없이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화롭게 안정된 교회는 매우 드물고, 희망을 품고 성장하는 교회는 거의 없고, 주일학교의 쇠퇴로 인해서 양적인 성장은 사라졌다. 쇠퇴하고 있으면서도 분쟁과 대립에 빠진 교회들이 악취를 뿜어내고 있다.

한국교회가 참혹한 침체와 몰락에서 벗어나는 대안이 무엇일까? 어려울수록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1. 성경 말씀의 본질을 증거하는 교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다시금 은혜를 베풀어주셔야만 희망을 찾을 수 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관행으로 시행하고 있는 바들을 정당화 하려고만 하지 말고, 예배와 행정과 재정집행 등을 완전히 바꿔야만 한다. 총체적으로 각성하고 갱신하여 완전히 새로운 교회상과 성도의 모습을 세워나가야만 한다. 한국교회를 회복하게 하는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대안이 되는 방안들을 찾기 위해서, 유럽의 종교개혁을 추적하여 보려고 한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