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을 보며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열강의 힘겨루기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내 한반도 평화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한편으론 구한말 조선반도를 제 입맛대로 요리해 삼키려했던 강대국 간의 치킨게임의 제2 라운드가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한반도 평화는 한동안 뒷전으로 밀려났다. 북한이 회담 실패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또다시 단거리 미사일을 두 차례나 발사하면서 우리는 맘만 먹으면 언제든 냉전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미국은 자국이 사정권에 드는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서 급할 게 없다는 식의 느긋함으로 우리 정부와 북한을 더욱 몸이 닳게 만들었다.

그 후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과 친밀한 유대를 과시하는 장면을 잇달아 연출하며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행정부를 자극했고, 결국 중국 시진핑 주석까지 평양으로 불러들여 극진한 대접으로 조중 친선을 유감없이 과시하면서 미국에게 자극적인 추파를 던졌다. 그 전략이 주효했는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담 후 한미 정상회담차 한국으로 향하는 도중에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에게 판문점에서 만나자는 깜짝 제안을 했고, 이 메시지를 받은 북한 김정은이 즉각 만나러 오겠다고 화답함으로써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는 리얼리티 쇼가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북한 최고 지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잠깐이나마 북한 땅을 밟은 것은 6.25 한국전쟁 이후 66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니 청와대와 모든 언론이 “역사적‘ 이란 수식어로 그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또한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이라는 분단의 역사적 현장에서 만나 사진 한 장 찍은 것만으로도 전 세계가 놀랄만한 일이라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라는 대전제를 놓고 볼 때 미국도 중국도 남일 뿐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세계 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미국이라도 한반도 평화 문제를 제 입맛대로 처리하도록 그 권리를 누구도 위임한 바 없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핵문제 보다는 재선을 앞둔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이용해 지지자들의 결집과 경쟁자와 자신에게 비판적인 미국 언론을 향해 자기의 치적을 극적으로 홍보하고, 반대로 지난 민주당 오바마 정부는 깎아내리는 화술로 사전에 의도된 듯한 화려한 정치쇼를 보여준 채 이 땅을 떠났다.

아마도 많은 국민들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1박2일간 방한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깜짝 행동과 거듭 반복된 자화자찬성 연설을 들으며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무역 전쟁 중인 미국과 중국에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휘둘리게 될지, 또 그로 인한 국론 분열이 우리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게 될지 참으로 암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을 강대국 탓으로 돌리고 한탄만 하기에는 우리의 형편이 그리 한가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정치 외교적으로 궁색한 처지가 된 것은 입으로는 평화 통일을 외치면서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 노력에 게을렀고, 항구적 평화 정착과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해 대화로 문제를 풀기보다는 적대적 냉전적 사고를 체제 안정에 이용해 온 남과 북의 다른 듯 너무나 닮은 생존 방식에서 그 원인과 해답을 찾는 것이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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