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 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 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댓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 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 문 현 미 시인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밥을 먹고 살고 있는가.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밥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시간이 되면 밥을 먹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던 기억 뿐이다. 그저 본능에 충실하게 살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허기 지지 않을 때 먹는 건 언제든 과식이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 오른다. 젊었을 때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자주 무언가를 먹고 있었던 것 같다. 주전부리하는 습관에 붙들린 삶이었고 밥의 가치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 없이 익숙한 습관에 붙들려 살아왔다.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는데 장석주 시인의 시가 그런 습관을 바꾸게 한다.

이 시는 귀 떨어진 개다리 소반 위에 놓인 밥 한 그릇이 시를 쓰게 된 동기이다. 밥상 앞에서 시인은 경건한 자세로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이 질문에 바로 답을 하기란 참 쉽지 않다. 더욱이 시인은 한 그릇의 더운 밥을 먹기 위해 지은 죄와 자기 기만을 돌아보게 한다. 시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고 너의 고백이며 우리 모두의 민낯임을 일깨운다. 이어지는 다음 연에서도 계속 과거의 부끄러운 자신의 언행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감추고 싶었던 날들에 대해 반추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한다. 여기서 시의 놀라운 힘이 작용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나의 잘못과 죄악과 허물을 토로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흑역사를 어떻게 쏟아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백지 위에 쓴 몇 줄의 언어, 즉 한 편의 시가 그런 행동을 하게 한다.

장석주 시인의 밥에 관한 시는 내용의 진정성으로 인하여 마음의 빗장을 열게 한다. 시인의 순수한 고백이 양심의 북을 두드리는 것이다. 시의 후반부 마지막 두 연에서 온전히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적 화자로 인하여 독자들은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가. 명예나 권력이나 부가 아니라 좋은 시가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예수님도 시인이심을 묵상해 본다.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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