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사람은 누구나 버린 것에 대해서는 찾지 않는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은 꼭 찾아 나선다. 예수님은 그렇지 안으셨다. 예수님은 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셨다. 삭개오를 보면 그것은 분명해진다. 삭개오는 유대민족들이 버린 사람이었다. 그러나 삭개오은 나뭇가지 올라가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다가가서 삭개오야 내려오라고 하며, 오늘 너희 집에 거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

사람은 누구에게 메여 산다. 아니면 물질에, 권력에, 여자에게, 남자에게, 폭력에 메여 살며, 죄의 지배를 받는다. 세상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미완성의 인간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세상에 메여 살지를 않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마저도 권력과 맘몬, 돈에 메여 살며, 범죄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상실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인간을 대신 할 수 있는 문명으로 발달하고 있다. 인간의 감각을 대신할 수 있는 문명사회가 된 것이다. 이제 면접시험도 콤퓨터로 한다고 한다. 이미 컴퓨터로 면접을 보는 회사가 100여곳에 이른다고 한다. 인간의 감각을 기계가 대신한다고 상상해 보라. 인간의 가치가 무너진 세상이 이미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미각도. 성욕도, 색감도, 예술도 기계에 빼앗기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죄에 대한 본질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죄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살 수 없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연을 만끽 하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가정을 이루는 것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교회에 나가는 것도, 이웃을 만나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며, 사랑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진보와 보수이다.

진보는 세상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에게 도달한다. 보수는 하나님에게서 출발하여 세상에 도달한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은 성령으로 새로워져야 한다. 인간의 삶의 변화는 성령만이 할 수 있다. 성령만이 답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세상을 품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빨리 바뀌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구원의 대상이다. 예수님은 당시 체제와 유대인들로부터 버림받은 세리와 문둥병자, 창녀, 손 오그라든 자, 귀신들린 자, 떠돌이 등 보잘 것 없는 사람 모두가 구원의 대상이었다.

예수님은 동족들로부터 멸시를 받으며, 힘겹게 사는 사람, 특히 삭개오를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삭개오는 어떻게 하면, 늘 동족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예수님은 문둥병을 고쳐주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으셨다. 병 고침 받은 것을 제사장에게 보여주고, 완치되었다는 증명서를 받아, 삶의 현장으로 복귀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이렇듯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아래 산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의 비유를 통해 교훈하신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과 벼랑 끝을 헤메셨다.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들판에 놔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섰다. 잃은 향 한 마리를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잔치를 벌이셨다.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간다.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의 가치를 아흔아홉마리 보다도 크게 보셨다.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회자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분명 성서의 가르침, 예수님의 교훈에서 이탈한 것이다. 예수님은 버린 것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교훈을 잊지 말자. 그렇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권력과 맘몬의 지배를 회개하고, 잃어버린 것, 버린 것도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찾아 나서자.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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