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 성 길 목사

누구나 어릴 적 추억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남다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란 영수의 추억은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영수는 할머니의 손에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영수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사랑이 아닌 마음의 상처이다. 신혼시절 영수의 아내는 설거지하면서 무심코 흥얼거렸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아내와 같이 설거지를 하던 영수의 표정이 굳어졌고 아내는 아차 싶었다.

"미안해, 여보 아까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그냥 나도 모르게 불렀지 뭐야."

영수는 아내의 말에 대꾸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수에게는 '아빠'라는 단어는 금기어이고, 아빠'에 대한 노래도 금지곡이었다. 그런 영수에게 아이가 생겼다. 영수는 아들을 둔 아빠가 된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여보, 아기 분유 좀 먹여줘."

아내의 말에 영수는 분유를 타고 방으로 들어가 아기를 안았다. 배가 고팠는지 급하게 먹는 아기......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이기며 아빠를 올려다보는 아기의 얼굴에서 영수는 눈길을 떼지 못했다. 영수는 아기가 편안히 잠들도록 가슴을 토닥여 주었다. 아기가 기분 좋은 옹알이를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영수에게는 그 소리가 '아빠'라고 들렸다. 영수는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노래, 아내가 무심코 불렀을 때 화가 치밀었던 노래, 그 노래가 무심코 영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동안 그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리워할 수도 없는 존재라서, 그래서 그는 그제 질투가 나서였다. 영수가 부르는 그 노래를 들으며, 서서히 눈을 감고 잠이 드는 아기를 보며, 영수는 괜히 아기에게 질투가 났다.

“그래, 넌 좋겠다. 아빠가 자장가도 불러 주고”

한 번도 제대로 불러 보지 못했던 노래를 영수는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불렀다. 아내가 방으로 들어서다가 노래를 듣고 놀라 물었다.

"어? 그 노래 우리집에서 금지곡 아니야?"

영수가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이 노래 금지 플렸어."

영수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언제 크레파스를 사다 줄 만큼 우리 아들이 클까? 48색 풀 세트도 사줄 수 있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인가. 영수는 사랑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데 너무나 흐뭇했다. 그리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가족은 나의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고,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예수님은 마음을 열어 너와 그를 받아드리라고 했다. 마음을 열어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와 네가 마음을 열어 주고받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회는 삭막하다. 돌로 만든 떡을 먹고, 굳어진 사회이다. 오늘 서로 미워하고, 다투는 모습은 모두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을 닫은 사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을 열어 너와 그를 받아드리라고 했다.

/새세움교회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