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과연 출애굽 직전의 밤을 어떻게 지냈을까? 그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더딘 새벽을 기다리며 뜬 눈으로 자유의 아침을 맞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성서는 야웨가 이 밤에 이스라엘을 밤새워 돌보며 지켰다고 기록한다. <새번역>을 따온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주님의 밤’이 곧 ‘야웨의 지키는 밤’이다. 문자적으로는 ‘야웨의 철야 경계’다. 시무림(םירמשׁ)은 샤마르(רמשׁ)에서 파생한 절대복수(plurale tantum) 명사다. 대부분 ‘지키다, 돌보다, 담당하다’ 등으로 번역되지만 본문의 용례는 전혀 다르다. ‘불침번, 야간 경비’를 뜻하는 vigil, nightwatch, 곧 밤새워 근무하는 파수꾼이다(시 63:6; 130:6). 여기에는 수동적이며 의무적인 순찰보다는 능동적인 자세로 보살피며 방어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헌신적이며 책임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카수토에 의하면 출 12장에 ‘샤마르’가 일곱 번 언급된 것은 야웨가 이스라엘을 돌보고 지키시는 분임을 강조하려는 장치다(6, 172, 24, 25, 422).<Cassuto, 149> 특히 42절의 ‘시무림’은 야웨가 이스라엘의 목자이며 구원자로서 가장 취약한 시간에 깨어있음을 상기시키는 데 적절한 수사다. 더구나 니산 월 14일 밤의 임박한 출애굽을 떠올린다면 결행의 순간에 야웨가 자신의 양떼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책임을 완수하려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 밤은 야웨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려는 밤샘(םירמשׁi)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야웨의 구원과 자유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밤샘(םירמשׁ)이 교차한다. 후자는 ‘이스라엘이 지키는 밤’을, 전자는 ‘야웨가 지키는 밤’이 된다.

야웨의 밤은 여덟째부터 열째까지 세 재앙의 어둠과 대조적이다.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 하늘을 볼 수 없고(출 10:5), 흑암이 삼 일 동안 세상은 깜깜하였다(출 10:22). 마침내 모든 장자가 죽기 시작한 열 번째 재앙은 밤중에 일어났다(출 11:4). 바로와 이집트는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 야웨의 밤이 조여 오는 어둠의 적막과 밤의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치 야곱이 요셉의 꿈을 마음속에 두고 ‘기다리며 지켜본’(샤마르) 것처럼(창 37:11) 야웨의 밤을 두근거리며 지켜본다(샤마르). 이제 곧 이 밤은 이스라엘이 가장 안전한 곳 야웨의 품에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한다. 야웨의 군대가 이집트에서 나와 이스라엘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야웨의 밤을 ‘적대 세력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보호를 받았던 밤’이라고 주석한다.<Pesahim 109b> 역사적으로 야웨의 밤에 대한 기억이 늘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중세 이후 야웨의 밤은 피로 얼룩진 밤이 되곤 했다. 일부 기독교인들 사이에 유대교의 유월절 의식에 기독교인의 피가 사용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것은 곧 유대인에 대한 공격과 테러로 이어졌다. 지난 20세기까지 유럽 각처에서는 야웨의 밤이 더 이상 이스라엘의 안전과 구원에 대한 기대로 지샐 수 없었다. 급기야 일부 광란의 무리들이 벌인 유대인 집단 학살(pogroms)은 유대교가 해마다 구원과 기적의 은총을 기념하는 ‘야웨의 밤’을 역설적으로 두려움과 공포의 밤으로 뒤바꾸어놓은 것이다. 그들은 악의 세력에서 자신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지켜야만했다.

야웨의 밤은 그분이 이스라엘을 ‘돌보시는’(םירמשׁ) 밤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이 그 날의 감격과 기쁨을 대대로 기념하며 ‘지키는’(םירמשׁ) 밤이다. 부버는 양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출애굽의 밤은 역사적인 축제, 특히 전 인류적인 축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건한 유대인에게만 허용된 축제가 아니라 동시에 지금 여기서 재현될 수 있는 축제가 되어야한다. 그리하여 출애굽을 최초로 경험한 세대와 뒤따르는 모든 세대가 서로 한 데 어우러지는 축하와 기념의 밤이 돼야한다.”<Buber, Moses 72-73> 야웨의 밤은 하나님의 ‘신실한 지킴’으로 비롯되고 이스라엘의 ‘소중한 지킴’으로서 비로소 완성된다. 머잖아 야웨가 깨어 보살피는 밤은 온 세상이 기다리며 지키려는 ‘거룩한 밤’(the Holy Night)이 될 것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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