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바사(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1세(B.C. 464-424년경 치세)의 신임을 얻어 술 맡은 관원이 되었다. 느헤미야는 당시 패권국 왕의 신임을 받고 안정된 삶을 살았지만 무너진 고국을 잊지 못했다.

어느 날 친척 하나니를 통해 고국의 수도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 의해 훼파되고, 성문은 불타고, 성벽은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는 소식과 백성들은 큰 환란을 당하고, 동포들이 질곡의 삶을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느헤미야는 끓어오르는 고국 사랑과 함께 고국이 처한 현실에 대처할 능력 없음으로 인하여 수치감과 모멸감에 치를 떤다. 그동안 평안하게 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죄송하고, 미안하여 아파했다.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내 나라를 기억해 주시고, 내 동포들을 위로해 주시고, 우리 조상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수일동안을 슬피 울며 하나님께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조국에서 전해진 비보를 듣고, 조국을 사랑하여 금식하며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위로의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느헤미야(Nehemjā)는 고국이 처한 현실 앞에서 수척해질 지경으로 금식하며 주께 기도드렸다.

바사왕 아닥사스다가 수척해진 느헤미야를 보고 묻는다.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느 2:2) 왕이 느헤미야가 수척해졌음과 병이 없음을 알정도로 느헤미야는 왕의 사람이었다.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느 2:3) 왕이 느헤미야에게 묻는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느 2:4)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2:5-8) 느헤미야의 진정한 조국 사랑이 묻어난다.

느헤미야는 비록 포로 출신이었으나 크게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왕을 모시는 관원으로 있는 때에 피폐해진 고국소식으로 뼈가 시려한다.

포로로 잡혀와 성공한 사람으로서 고국의 험한 소식을 접하면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할만도 한데 고국이 처한 참담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린다. 이것이 나라를 사랑하고, 위하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모습이다.

어느 나라나 위기의 역사는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역사로 점철되었고, 지금도 사실 그렇다. 국가적 어려움의 때에 자기 보신(保身)을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친일파도 생기고, 매국노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나라다. 우리는 대륙 끝의 반도(半島) 국가이고, 주변국들은 모두 지구촌 강대국들이다.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자주독립국가로서 번영을 이루어 내야 하는 분단된 작은 나라다.

북서쪽에는 지구촌에 중화질서를 주장하는 중국이 있고, 남동쪽으로는 후치무한의 경제대국 일본이, 태평양을 건너 이시대의 패권국 미국이 있다. 그리고 북서쪽에는 러시아를 접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 나라에 끼어 세력의 각축장이 되곤 한다. 현하 우리는 민족역사 중 가장 부요하고 풍요로운 시대를 누리고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이 세 나라로부터 단호히 지켜낼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이런 조국을 향해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느헤미야처럼 조국을 위해 더 성실하고, 신실하게 믿음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의 성취를 위해 기도드려야 한다. 금식하며 골방에서 기도드려야 한다.

한국교회를 몽땅 볼모로 잡고, 청와대 앞에서 금식 중에 드링크를 마시며 호사스럽게 단식(?) 투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느헤미야처럼 조국의 처한 현실을 하나님 앞에 들고나가 조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드려야 한다. 내 아집과 나의 이념적 주장과 정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건강한 코람데오의 신앙과 자세를 왜곡하여 써먹거나 도구화할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조국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도 왕 앞에서의 자기 몫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느헤미야를 배우고, 권력 앞에 줄을 서고, 이념을 권력화하며 폭력 또는 대립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답게 신실함으로 주의 섭리를 구할 일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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