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지난 서울고등법원 법정에서는 ‘살인·살인미수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부부의 항소심 첫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석에 선 옥색 수의 차림의 엄마는 하염없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반성문을 읽어 내려갔다. 피고인 이 부부는 10살이 채 안 된 어린 세 딸과 함께 세상을 등지려다 7살이던 둘째 딸이 부모의 일순간 잘못으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부모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엄마의 눈물은 빚에 눌려 힘겹게 살던 부모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딸을 향한, 하늘을 향한 사무침이었다.

“깨어나 미친 듯 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굳은 손을 펴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구급차를 기다린 그 순간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외로이 떠난 딸이 떠오를 때마다 제가 악마가 아니었나 하고…”

이 부부의 사연은 지난해 12월 어느 날로 돌아간다. 부부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세 땅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주었다. 마지막 장남감도 선물했다. 집에 돌아온 부부는 음료수에 수면제를 넣었다. 그리고 다섯 가족들은 나누어 마셨다. 아이들이 잠들자 부부는 연탄가스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문틈에 테이프를 붙이고, 연탄불을 피운 채 방에 함께 누웠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 때,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잠들었던 막내딸이 깨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 것이다. 잠들었던 B씨가 눈을 떴을 때 딸들의 코에서 피가, 입에서는 거품이 나고 있었다. 놀란 B씨는 119에 신고한 뒤 딸에게 응급조치하고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막내가 문을 연 덕에 부부는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둘째는 끝내 깨지 못했다.

1심 재판부는 “부부의 행동은 어린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으로 엄중히 처벌해 동반자살을 기도하는 행위를 막아야 할 필요가 크다”며, 아빠에게 징역 5년을, 엄마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의 주문은 틀리지 않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태어난 날부터 하나님에게 속한다. 사람의 인권은 천부적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녹녹치가 않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들법원 형사1부(재판장=정준영 판사)는 판결을 고심해서, “한 달간 달라진 삶을 보여달라”고 부부에게 제안하고, 재판부 직권으로 보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날 법정에서 “부모도, 살아남은 자녀도, 다른 가족들도 다 마음이 아픈 사건”이라며 검사와 피고인 측에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고 재판을 시작했다. 제안은 한달 가량 엄마 B씨를 재판부 직권으로 보석하는 것이었다.

보석은 구속 된 피고인을 법원이 특정 조건을 걸고 임시로 석방해주는 제도다. 조건을 어기면 보석이 취소될 수 있고 보석이 곧 무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장은 이 가족의 사례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허덕이는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의 이웃은 빚에 못 이겨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고, 끊으려고 시도한 이웃이 적지 않다. 자동차 안에서 일가족 주검의 발견, 의정 아파트에서 비극을 맞은 일가족 등등 모두가 그렇다.

사회복지사들은 이런 극단적인 가족의 집단적인 죽음을 극단적인 아동학대로 본다. 기독교 신학자들도 이런 죽음에 대해서, 아이들을 소유물로 보는 결과 빚어낸 성서의 이탈행위로 간주한다. 분명한 것은 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살인이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계시다. 이 부부의 죄명도 ‘살인’과 ‘살인미수’이다.

보석으로 석방된 B씨는 아이들에게 돌아간 이후, 그간의 활동 보고서를 25일 법원에 제출했다. 아이들과 함께 전문 기관에서 심리 치료도 받았다. 아이들은 조부모, 고모와 생활하는데 B씨는 재판부가 지정한 시간에 다른 집에서 생활하며 조건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네 이웃이 어디에 있느냐”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중앙일보 참고)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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