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다.


삶이란
중력을 거스르는 일
봄바람에 피어나
위로 위로 솟아 오르는 새싹처럼……

죽음이란
중력으로 돌아가는 일
팔랑
갈바람에 떨어져 뎅구는
낙엽처럼……

 

- 『시사사』 2019년 5~6월호에서

*오세영 ; 예술원 회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과). 소월시문학상. 목월문학상 등

▲ 정 재 영 장로

존재에 대한 무거운 담론이다. 시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철학적 담론을 철학자와 달리 설명하지 않고 비유로 납득시키려 한다. 사물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대치하여 보여주고 있다.

삶은 새싹으로, 죽음은 낙엽으로 보여준다. 누가 삶이 무언가 질문한다면 봄바람에 싹트는 새싹을 보라는 것이다. 반대로 죽음은 낙엽을 보면 (설명할 필요 없이) 저절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깨닫는 것은 지식적인 면이 아닌 감성적인 요소를 뜻한다.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의 차이는 중력을 거슬리거나 그것에 순복하는 점을 말하고 있다. 중력은 땅에서 잡아당기는 질량과 같은 것이다. 새싹을 중력을 거부하고 위로 솟는 것이고, 낙엽은 중력을 못 이겨 땅에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중력이란 주어진 환경을 이기는 것을 말한다. 삶의 투쟁적인 면과 죽음의 포기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 원인은 바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바람이란 하늘 이미지로, 하늘에 의하여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구조상으로 보면 양극화된 이질성 형식을 가진다. 삶과 죽음, 솟음과 떨어짐, 거슬림과 순복하는 일, 봄과 가을, 하늘과 땅의 역방향 지향성 등, 서로 이질적인 구조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 도출을 꾀하고 있다. 이처럼 두 요소가 융합될 때 컨시트(기발한 착상)가 생기는 것은 미학적 기전으로 보면 당연하다. 이 작품을 볼 때 양극화된 이질성을 의도적으로 기획한 창작 기법을 알게 해준다.

좋은 시란 신기하게도 양극화된 이질성이 새로운 융합을 생성하는 형식을 가진다. 평자는 이런 시론을 ‘융합시학’이라 명명하였다. 17세기 형이상시의 기원으로부터 20세기의 유명한 시인들과 신비평학자들의 창작론에서 그 역사성을 가진다. 현재에도 이 이론은 예시처럼 유효하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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