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따라 살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종이어야 하는데 실제로 우리의 삶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지, 예수님을 우리의 종으로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예수님을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점점 높아지려고 애쓰는 삶이 아니라 점점 낮아지려고 노력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 아들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늘의 모든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말구유였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낮은 곳입니다. 예수님이 사신 곳은 갈릴리 바닷가에 있는 산골 나사렛이라는 동네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점점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어울린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 천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것과는 정 반대의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잘 사는 나라에 속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잘 살려고 더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정말 부자였지만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최고의 부자께서 최고로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부자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가난하게 사셨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것은 이와 같이 낮아지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주님은 다른 사람을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고생하지 말고 편하게 살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다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위해 고생하며 살아라”고 말할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산다면 섬김을 받기를 바라고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낮아지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할 때 참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며 사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세리였지만 주님을 만나고 일순간에 자신의 직업을 버렸습니다. 삭개오 역시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의 돈을 나눠주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는 각자 형편은 다르지만 나름대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면서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주님은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시고 낮추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가장 높은 자리에 두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낮추면 낮출수록 주님께서 높이실 것입니다.

생명나무숲전원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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