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지금 시대는 교회 건물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헷갈리는 시대인 것 같다. 교회가 주장하는 교회에 대한 진정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그리고 대형 교회의 입당 예배를 두고 갑론을박 하자는 심사도 아니다. 교회란 도대체 무엇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시각이다. 구약의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에 의해 아버지가 준비해 둔 건축 자금으로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낙성식을 올렸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거대한 성전의 낙성식은 주변 나라들을 압도하는 국력의 과시기도 했다. 솔로몬이 낙성식 때 제물로 드린 제수용품의 수는 말로 표현키가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였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드린 낙성식을 받으시고 그에게 아버지 다윗 왕에게 내린 축복의 계승을 다시 한 번 약속 하셨다. 그가 기도 한 것들을 가납하셨다.

그리고 대를 이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위해선 반드시 이행해야 할 조건을 부여했다. 이는 모세의 율법과 오경 속에 계시된 율례와 규례를 온전히 지킬 것을 명 하셨다. 솔로몬 이후 열 왕들과 백성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켰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었다. 낙성 식 때에 사용된 제물들은 제사장 몫과 백성들의 몫으로 나누어 모두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렸다. 그 시대 하나님께서는, 성막 시대에는 성막에, 성전 시대에는 성전에 임재 하셔서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알게 했다.

문제는 신약시대에 교회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교회가 과연 성전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하나님이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사건으로 인해 성전의 개념이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거듭난 신자들과 함께 교회라는 유기체가 되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성막과 성전에 임재하시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이후에 살아 있는 몸으로 교회를 이루셨다. 교회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현대 교회들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은 바로 신자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장소인 일명 교회 건물을 잘 건축하는 일이다.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을 오육십 년대에는 예배당이라고 호칭하는 간판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팔구십 년대에 들어오면서 예배당이 교회라는 말로 변경되어 이제는 전국적으로 예배당으로 사용하는 곳이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그리고 교회라는 단어 대신 이제는 교회건물을 다시 구약 시대의 개념인 성전이라는 호칭이 유행하고 있다. 과연 예배당이 교회로 교회가 다시 성전으로 이미지가 전환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이해불가다. 어느 명칭이 가장 성경의 계시를 따르는 길인지도 헷갈린다.

또한 교회라는 명칭은 중소 교회의 호칭할 때 쓰는 명칭으로, 성전이라는 명칭은 중대형 교회의 건물을 호칭할 때 쓰는 명칭으로 개념화 되다보니 크나 작으나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같은데 건물의 크기에 따라 명칭도 다른(?) 것은 같은 성경을 믿는 신자들 간에도 이해 불가다. 본래 초대 교회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유기체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도 세상에 존재하다 보니 세속적으로 타 종교와 비교하여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건물의 크기로 교세를 들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아마도 교회 건물의 세속화 과정에서 중대형 교회 건물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과연 오늘날에도 중대형 교회가 세워져 낙성식을 거행 할 때에 거금을 드려야 하는가? 솔로몬의 성전 낙성식을 본 따 거대한 헌당식 또는 입당식을 치러야 하는지? 지금 교회 주변을 돌아보면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헤아릴 수 없다. 그런데도 교회는 신자들의 헌금을 성경의 계시와는 무관한 일에 도에 지나치게 사용하고도 아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다. 교회의 헌금이 무서운 돈이며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교회는 지식적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신앙적으로 깨달았으면 한다. 지금 사회에는 경제가 어려워 개인 기업이 문을 닫고, 청년들의 실업이 최고조에 이르고, 독거노인들이 생활이 어렵고, 부모 없이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 데도 중대형 교회들은 눈을 사회의 어두운 곳은 보기 싫어하고 자신들이 아방궁과 같은 초현대식교회 건물을 치장하고 돌보는 일에 급급하고 있다. 그리고 무슨 잔치다 하는데 사용하는 자체 행사에 거금은 들여도 주변의 어두운 곳에 빛과 소금의 역할은 주저하고 있다. 과연 지금 교회가 하는 일 신앙적인지 물어봐도 되는지?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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